농가에게 말 사육 취미로 하라는 농식품부

승용마 생산농가 경영난 심각 … 말산업 번식기반 뿌리째 ‘흔들’
경주마 시장진입 제한 공염불 “품종별 목표 제시해 희망 달라”

  • 입력 2019.03.10 18:00
  • 수정 2019.03.10 19:22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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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2차 말산업 육성 종합계획이 시행되고 있으나 승용마 생산농가에겐 희망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뚜렷한 목표를 농가들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그나마 만들어 온 승용마 번식기반마저 붕괴될 상황이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승용마 사업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마저 못하고 있어 해법을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농식품부는 제1차 말산업 육성 종합계획에 전문 승용마 생산농가 육성을 추진과제로 정하고 지난 2016년까지 77개 농가를 전문승용마 생산농장으로 지정해 육성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 농장은 승용마 번식기반과 판로가 미비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상태다.

경기지역의 한 전문승용마 생산 지정 농가는 “최근 가축재해보험에 들려고 2년 사육한 말의 가치를 책정해보니 400만원이 나오더라. 망아지는 300만원에 팔았다”라며 “씨암말을 들여 몇 년 째 투자하고 있지만 희망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농가는 “사료값에 구충제·톱밥비용, 그리고 발굽 등 관리와 번식비용까지 합하면 보조를 제외하고 2년 동안 2,000만원 넘게 생산비가 들었다”라며 “거점번식지원센터를 통한 번식도 어렵고 센터가 말 관리도 제대로 못해 사업을 접을까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농식품부는 이들 농가에 6종의 씨암말 181두를 도입해 국내에서 전문승용마를 번식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씨수말은 권역별 거점번식지원센터 4개소에 22두를 배치했다. 지정 농가가 씨암말을 센터로 보내 교배 및 인공수정을 통해 승용마를 번식하겠다는 게 당초 구상이다.

그러나 수태율이 낮아 농가들은 추가부담을 하고도 번식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농가는 “말은 임신기간이 11개월이고 3월부터 7월 사이에 계절번식을 하며 발정기는 20일 간격으로 온다. 결국 1년에 몇 번 오지 않는 번식 시기를 놓치면 수십만원이 드는 운송비만 들인 채 농사가 망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판로는 깜깜하기 이를데 없다. 경주퇴역마가 무분별하게 승용마 시장에 풀리며 가격이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다 거래마저 끊긴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제2차 말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경주퇴역마의 승용마 시장 진입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공염불 수준이다.

매년 승용마로 기초등록되는 말은 1,200여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매년 1,300여두 정도 배출되는 경주퇴역마와 경주마 중 능력저하마로 시장에 나오는 말들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거점번식센터에서 교배 및 인공수정 시술을 받은 두수는 고작 786두에 불과하다. 786두가 모두 번식에 성공했어도 평균적으로 매년 131두를 생산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경주퇴역마와 능력저하마에 묻혀 100두 규모의 전문승용마 판로조차 막힌 것이다.

이승몽 전문승용마생산지정농장 대표자회의 사무국장은 “한국마사회가 권역별 거점번식지원센터를 총괄하지만 정작 승용마 번식을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다. 장수팜에 있는 수의사가 업무를 함께 떠맡고 있으니 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들여온 6개 품종이라도 제대로 관리해 품종별로 우수한 말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현재 유소년 승마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유소년이 기승할만한 품종이 제대로 생산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생산자들은 판로가 없고 정작 적합한 품종을 찾는 곳은 원하는 말을 구하지 못하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라고 진단했다.

결국 해법은 농식품부에 달려 있다. 이 사무국장은 “농식품부가 전문승용마 생산 목표부터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라며 “품종에 맞게 번식해 엘리트승마부터 유소년 승마, 재활승마센터, 농어촌 승마길, 도심형승마장, 소규모 호스랜드 등에 공급하면 판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거점조련센터 운영을 전문화 해 전문 승용마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말산업에 대한 이해는 이같은 요구를 반영하기엔 거리가 멀다는 게 승용마 생산농가들의 평이다. 농식품부 축산정책과가 올 초에 배포한 ‘승용마 생산·육성 정책 현황’ 자료를 보면 승용마 생산사업에 대해 ‘생산기반 정착시까지 애완·반려동물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취미·부업형 생산이 바람직하다’면서 ‘농가 대상 단기간 내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어려워 전업이 아닌 취미사업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고 밝혔다.

농가들은 승용마를 번식해 공급할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무기한 손해를 감수하라는 의미다. 농식품부가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자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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