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토론 한번 없이 공모 ‘직행’

현장농민들, 공모마감 코앞까지 사업내용 몰라
뒤늦게 비공개로 ‘믿어 주시라’ 호소한 밀양시

  • 입력 2019.03.08 16:55
  • 수정 2019.04.03 11: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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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의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 1차 공모 때 준비한 예정지를 그대로 2차 공모에 제출한 강원도(춘천)와 충청북도(제천)는 지역 농민들의 반대가 격렬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 채 결국 공모를 강행했다. 그러나 아예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상남도의 사례를 보면 그나마 당당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2차 공모에 참여하는 경상남도의 후보지로 선정된 밀양에서는 공무원들의 독단과 농민들의 무관심이 겹쳐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경남 밀양, 준비기간 2개월도 안돼

경상남도가 본래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생각하고 있던 부지는 고성군 하이면이었다. 그런데 남동발전이 소유하고 있던 예정부지의 매입 가격이 높아 비용 문제로 난항을 겪자 목표를 밀양시 삼랑진읍으로 전격 선회한다. 고성군에서 열릴 예정이던 농민단체 간담회가 취소된 것이 1월 말, 설 연휴를 생각하면 공모마감까지는 약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사업성이나 지역에 미칠 파급효과 등에 대해 지역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경상남도는 공모 신청을 포기하지 않고 예정지를 바꾸며 사업 준비를 이어갔다. 경상남도의 사업계획서에는 2회에 걸쳐 예정지 마을주민과 밀양시 농민단체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동의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으나, 사업내용 전체가 정확히 공유됐다고 보기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밀양시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했던 김종원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밀양시연합회장은 “시에서 마련한 자리에 갔지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입장은 아직 생각해보고 있다”고 답했고, 또 다른 익명의 농민단체장은 “그저 청년농 육성을 한다고 하기에 좋은 사업이라고만 생각했다”고 전했다.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대해 조직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발표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의 밀양시농민회(회장 이헌식)는 아예 소식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모 직전까지 사업내용 몰랐던 현장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 정황은 따로 있다. 정작 시설농업을 하는 현장 농민들은 2차 사업부지 선정 공모마감(8일) 직전까지도 사업내용을 알고 있지 못했다.

지난 5일 50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는 밀양의 대표적 작목단체 한 곳은 그간 알지 못했던 재배면적이나 운영 예산에 관한 문제의식을 접하고, 이 사업이 끼칠 영향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한번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며 사업계획서를 가져온 이들이 경상남도나 밀양시는 아니었다. 고성에서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추진될 때부터 문제제기에 나섰던 전농 부산경남연맹의 농민들이었다.

강선희 전농 부산경남연맹 정책위원장으로부터 ‘재배면적이 10ha나 늘어나고, 이미 과잉생산의 상황에서 수출 목표량을 채운다는 보장도 없으며, 막대한 운영비가 밀양시 재정에서 나갈 수 있다’는 우려를 들은 회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하우스 재배면적에 대한 불안감과, 가격 문제엔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요구한 적도 없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한 서운함이 터져 나왔다. 이미 몇 차례 폭락을 겪은 데다 다른 지역의 사례를 접해 가격지지 정책에 대한 열망이 컸다. 한 회원은 “하우스 작물 폭락에 대해선 (도나 시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지 않느냐”라며 “먼저 농산물 가격보장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있어야 우리가 이걸 허락하지”라며 열변을 토했다.

모인 회원들은 이날까지 스마트팜 혁신밸리라는 사업 자체에 관해 아예 몰랐거나, 혹은 설명회에 참석했던 농민단체 대표자들로부터 ‘청년농 육성을 위한 사업’ 정도로 전해들은 상황이었다. 이 작목회는 “미심쩍은 부분도 있고 우선 시간도 촉박하니 의사 표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이날 바로 시청과 시내 중심가에 현수막을 걸기로 했다. 바로 문구를 작성하고 참여단위의 모집도 시작했다. 전농 밀양시농민회의 지회들과 한농연 밀양시연합회의 지회들, 품목단체 및 공선 출하자회 등이 들어간 명단까지 작성된 상태였다.

그런데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밀양시가 곧바로 개입하며 상황이 반전된다. 밀양시의 담당부서가 바로 그날 저녁 이 작목회원들만을 대상으로 ‘비공개(?) 설명회’를 열고 회원들의 설득에 나선 것이다. 작목회는 설명회 뒤 태도가 급변, “전농 부경연맹과 시의 설명이 다른 것 같다”라며 준비하고 있었던 입장을 바로 철회했다. 6시간 전만 해도 이미 과잉인 하우스의 면적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롯해 시설농업의 애로사항을 쏟아낸 것을 생각하면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비공개로 “그저 믿어달라” 호소

이 지역 농촌사회에서 관찰된 일련의 흐름은 지자체가 여론 수렴에 무관심하며, 공무원들의 독단에 의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독주에는 우리 지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농민들의 무관심도 일조했다. 이 비공개 설명회에 참석했던 손기혁 밀양시농민회 무안면지회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닌 ‘지연’에 의지한 호소만이 전부였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사업에 찬성하는 시의원, 도의원이 한명씩 같이 와서 ‘절대 여러분에게 해가 가지 않을 테니 믿어 달라’라고 할 뿐이었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그러겠거니 하며 넘어가더라. 밀양시농민회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라고 증언했다.

밀양시 관계자는 “고성에서 이 사업을 잡고 있던 기간이 길어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맞다”라며 시인했다. 그러나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기술 실증이나 청년농 육성 등 순기능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며 “재배면적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귀농·귀촌으로 인한 증가분에 비하면 훨씬 적은데다, 전농이 주장하고 있는 면적 중 실습용 스마트팜 면적(4.3ha)은 출하경쟁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밀양지역의 시민단체들도 비공개 설명회가 열리던 그 시각 대책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밀양시지부, 전농 부산경남연맹, 밀양시농민회, 민중당 밀양시위원회 등은 현안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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