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노지채소 가격이 품목을 불문하고 한꺼번에 폭락했다. 정부가 뒤늦게 산지폐기를 진행했지만 떨어진 가격은 조금도 올라오는 낌새가 없다. 현장에선 땜질식 산지폐기 외에 보다 근본적인 수급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산지폐기의 계절이다. 겨우내 정성을 쏟은 채소밭이 농민들의 마음과 함께 곳곳에서 트랙터에 짓이겨지고 있다. 지금까지 폐기된 물량은 배추 7만1,000톤·무 4만8,000톤·양배추 2만3,000톤·대파 2,000톤·쥬키니호박 220톤이다. 배추·무·양배추는 정부 폐기와 산지 자율폐기가 집계된 양이며 대파·양파 등은 위 물량에 더해 훨씬 많은 양의 자율폐기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최근 도매가격은 배추 2,000원/10kg, 무 8,000원/20kg, 양배추 4,000원/8kg, 대파 800원/1kg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미세하게 반등한 양배추를 제외하면 오히려 더 하락하는 추세다. 2만톤 이상의 자율폐기가 진행 중인 양파도 햇조생 출하를 앞두고 여전히 kg당 600원대를 붙들고 있다.
농식품부는 “공급과잉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가격세 반전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고 수급대책을 자평하며 지난 4일 공공급식 납품 확대·기획특판·수출지원 등 소비촉진안을 추가 수급대책으로 내놨다.
농민들은 산지폐기가 가격지지에 실패한 건 폐기 시기가 너무 늦은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재배면적 통계 자체가 부정확하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종자판매나 실사에 의한 조사가 아닌 ‘재배 의향’을 묻는 조사로 정확성이 떨어질뿐더러 겨울배추 후작 양파 등 통계에 전혀 잡히지 않는 물량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공급과잉이 해소됐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아직도 수요대비 많은 물량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산지폐기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더 크게 부상하고 있다. 물론 당장의 충분한 산지폐기는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대파·양파·배추 수입물량이 공히 늘어났다. 수입 관련 대책이 없으면 수입 외 물량을 갖고 우리끼리 이전투구하는 꼴밖에 안된다. 밭을 갈아엎는 단편적 대책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입 문제는 최근 품목별 주산지마다 공통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다. 과거엔 국내 폭락 시 수입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엔 폭락 시에도 일정한 물량, 혹은 그 이상이 꾸준히 수입되고 있다. 이에 전남 무안 양파농가 100여명은 지난 7일 채소 품목 투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해 수입물량 PLS 전수조사 및 검역 강화조치를 요구했다.
그 밖에 국내 물량에 대한 근본대책 요구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남 대파농가 100여명은 지난 6일 청와대를 방문해 수급조절 예산 확대와 계약재배 생산비 보장을 촉구했으며, 도매시장엔 낙찰가 상·하한제 시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농 광주전남연맹은 지난 4일 성명을 발표, “정부가 수급 관련 권한과 예산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산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예산과 권한 없이 어떻게 책임을 강화할 수 있나”라며 최소한 전국 생산량의 50% 이상을 생산하는 지역엔 수급정책 예산·권한을 이양해 대책 효율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총체적 폭락 국면을 맞아 전국 각지의 주산지에서는 품목별 생산자조직 결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농민들은 품목별 조직과 이를 아우르는 전국 연합조직을 만들어 정부 수급정책에 보다 적극적으로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