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생산과잉
[기자수첩] 생산과잉
  • 권순창 기자
  • 승인 2019.03.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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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채소 동반폭락 사태에 대한 정부의 진단은 ‘생산과잉’이다. 그러다 보니 대책은 책임감이 없고 소극적이 된다. 생산과잉을 초래한 산지에 책임을 떠넘긴 뒤 뒤늦게 선심 쓰듯 예산을 투입하지만 가격은 올라오지 않고, 그럼에도 소비촉진이라는 허무한 대책으로 마무리 땜질을 한다.

하지만 책임을 강요받기엔 산지는 억울하다. 만약 국내 품목 간 재배불균형으로 인해 생산과잉이 발생했다면 해당 품목을 재배한 농가의 과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품목의 재배가 포화 상태로, 애당초 농가의 재배의향이 폭락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비단 올해뿐 아니라 매년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단지 폭락이 없었던 해는 재해로 인해 작황이 무너졌을 뿐이다.

원인은 단연코 수입이다. 한두 품목이 아니라 모든 품목이 포화 상태에 몰렸다는 건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최근 김치·양파·대파 등의 수입량이 국내산 폭락에도 아랑곳않고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이미 수입산에 대한 견고한 고정수요처가 생겼다는 뜻이다. 수입이라는 커다란 돌덩이를 기저에 두고 국산 농산물은 수면에서 찰랑이다 넘치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생산과잉을 운운한다면 결국 수입을 위해 모든 품목의 생산규모, 즉 농지 자체를 줄이자는 결론밖엔 낼 수 없다. 이는 농업 구조조정과 국토 파괴, 식량주권 상실이라는 가공할 난제와 후폭풍을 수반하는 일이다. 물론 정부의 농정방향이 이를 향하리라곤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폭락의 원인이 생산과잉이라는 진단은 틀린 것이다.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수입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책의 포커스를 수입 축소에 맞추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전폭적인 예산 편성으로 폭락 사태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생산과잉이란, 적어도 정부가 수입물량을 합리적 수준으로 관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폭락했을 때 비로소 얘기할 수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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