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깎고, 흙 메우고’ 1차 선정지 입지 실태

적합성 논란의 경북 상주 … 부지 70%가 경사 10~15도 임야
보존 가치 높은 전북 김제 부용제, 농민·환경단체 반대 부딪혀

  • 입력 2019.03.10 18:00
  • 수정 2019.03.10 19:16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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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경북 상주시 사벌면에 조성될 스마트팜 혁신밸리 기본계획안에 포함된 조감도. 경상북도 제공
경북 상주시 사벌면에 조성될 스마트팜 혁신밸리 기본계획안에 포함된 조감도. 경상북도 제공

 

농민 반대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불굴의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 사업이 지지부진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 삭감에 이은 사업계획의 수정, 농민과 지역 주민 등의 반대가 지속된 까닭으로 짐작되고 있으나 당초 부지 선정 계획부터 잘못됐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 농식품부)는 지난해 4월 스마트팜 종합 대책을 마련하며 2022년까지 총 80ha 규모의 스마트팜 혁신밸리 4개소 조성을 공포했다. 이미 1차 공모를 통해 전라북도 김제시와 경상북도 상주시가 지난해 8월 대상지로 선정됐고 최근엔 2차 부지 마련을 위한 공모가 한창 진행 중이다.

경북 상주시는 사벌면 엄암리 일원에 18.2ha 규모의 핵심시설 조성을 계획했으나, 해당 부지는 전체의 70%가 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비탈진 산자락을 깎아 내고 흙을 쌓는 등의 평탄화 작업을 통해 입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인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그렇게까지 하면서 스마트팜을 꼭 만들어야 하냐’는 의문과 ‘재정 낭비하며 건설업자 배만 불린다’는 질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최병찬 상주시청 스마트농업추진단 주무관은 “계획관리지역인 해당 부지는 지목상 임야가 약 70% 정도를 차지하지만 구릉지기 때문에 경사가 심하진 않다”며 “경사도는 대략 10~15도 정도로 파악되며 산지전용허가 등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재정 낭비 우려와 관련해선 일반적으로 판단하기 좀 어렵지만 평지를 성토한다고 하면 다른 곳에서 흙을 운반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한데 산지의 경우 위에서 깎아 내려오면 그 흙을 다시 쌓는 게 되니까 오히려 더 양호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1차 선정지 전북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일대 19.4ha 규모의 혁신밸리 핵심시설은 매립한 부용저수지 위에 조성될 예정이다. 이에 지난 2010년부터 부용저수지 되살리기 운동을 계속해온 부용저수지생태습지보존대책위는 김제시 스마트팜 혁신밸리 반대위원회를 꾸려 부지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조찬중 반대위 공동대표는 “부용저수지엔 3급 멸종위기종 물고사리를 비롯해 가시연꽃 등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고 있어 생태·환경적 보존 가치가 높다”며 “정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습지에 정부가 직접 나서 혁신밸리를 조성한다는 계획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병석 김제시청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부용저수지는 1991년 용도 폐지된 후 쓰레기 등 악취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민원 제기가 끊이질 않아 매립을 결정했었고, 지난해 혁신밸리 공모 사업을 신청하기 전 이미 30% 정도는 매립이 진행된 상황이었다”며 “독미나리의 경우 매립 시작 후 저수지 물이 빠지자 서식 조건이 갖춰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새만금환경청과의 현장 확인을 마친 결과 대체 서식지를 마련한 뒤 멸종위기종 및 희귀식물을 이식할 계획을 세웠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일부에선 대체 부지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나 정부로부터 이미 사업 계획을 승인 받았고 세부 설계 계획 등을 잡아가는 단계기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여건상 부용저수지 외에 보유하고 있는 시유지도 충분하지 않고, 부지를 이전하려면 토지를 새로 매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 경비가 수십억원 이상 늘어나게 되므로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찬중 대표는 “멸종위기종 물고사리는 포자로 생식해 이식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대체 서식지라는 게 원래 면적의 4.2%에 불과해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공존할 장소성을 반영할 수 없다”면서 팽팽한 대립을 이어갔다.

 

“200톤 대형 관정 5개? 주변 농가 다 죽으란 소리!”

전북 김제에선 부지로 선정된 부용저수지의 생태·환경적 보존 가치 외에 용수 확보가 발목을 잡고 있다.

김제시는 혁신밸리 조성 공모 당시 스마트팜 등에 사용할 용수 마련 방안으로 지하수를 제시했다. 시설원예 평균 최대 관수량으로 재배면적 ㎡당 10L/일 기준을 적용해 1일 필요 관수량을 약 1,000톤으로 계산했으며, 하루 200톤/공 이상 용수 확보가 가능한 대형 암반관정 5개를 조성한단 계획이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자 부지 인근의 농민들은 우려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혁신밸리가 조성될 지역 주변엔 상당수 농가가 포도를 재배 중인데, 대형 관정 5개가 설치될 경우 지표수위가 낮아져 용수가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은 “시장이 지하수를 이용하지 않고 저수지를 준설해 물을 담아 사용하거나 금강 수계를 이용하겠다고 직접 얘기했다. 그런데 사업 계획서엔 여전히 관정 설치가 명시돼 있다”면서 “금강 수계를 이용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영농철에만 용수를 공급하기 때문에 그 이외 기간엔 지하수를 쓸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뭄으로 주변 농가들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시청에 방문해 지하수가 고갈될 경우 대책이 있느냐고 항의했으나 아직도 이렇다 할 답변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병석 김제시청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시장께서 마을을 순회하며 농가 얘기를 듣고 지하수 사용을 않겠다고 했고, 실무팀에 용수 마련을 위한 대안을 강구해보라고 지시한 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결론적으론 금강 수계 농업용수 공급이 4~9월에만 가능한 반면 스마트팜은 1년 내내 용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하수도 이용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후 민원이 계속되자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든 금강 수계에서 1년 내내 물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게끔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현장 의견과 동떨어진 정부 및 지자체의 일방 행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립은 격화되고 있다. 2차 공모를 진행하기에 앞서 지금이라도 1차 사업 선정지의 부지 조성 등 사업 계획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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