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유기농산물에선 잔류농약이 극소량이라도 절대 검출되면 안 된다는 프레임이 아직 건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약을 일부러 치지 않았음에도 각종 비의도적 사유로 농약이 혼입돼 친환경인증 취소를 당하는 농민들이 있다. 그들이 생산한 ‘잔류농약 혼입 유기농산물’을 소비자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과 양성범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논문 ‘비의도적인 잔류농약 검출에 대한 소비자 인식 : 유기계란을 중심으로’는 이에 대해 “친환경농민의 생산과정이 건강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소비자들은 유기농산물을 충분히 수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다.
이 답을 내놓기 위해 유 소장과 양 교수는 지난해 소비자 3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내용은 △식품위해요소에 대한 중요도와 안전수준 △비의도적 잔류농약이 검출된 농장, 닭, 달걀에 대한 조치 △유기계란의 잔류농약 검출 허용한계에 대한 인식 △잔류농약 검출농도에 따른 구매의향 및 지불의사금액 등이었다.
총 3차의 설문조사는 동일한 문항으로 진행됐으며, 각 설문조사 사이엔 관행·유기산란계의 사육과정, 유기계란에서도 비의도적으로 잔류농약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 외국 사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정보 제공 전후의 소비자 인식 변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위 정보들을 소비자들이 제공받음에 따라 잔류농약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된 달걀을 폐기(1차 19% - 2차 11.3% - 3차 9.2%. 이하 괄호 동일)하자거나 관행계란으로 팔아야 한다(68% - 70.3% - 59.9%)는 의견은 줄었다. 반면 달걀의 유기인증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13.1% - 18.4% - 30.9%)은 증가했다.
비의도적 잔류농약이 검출된 유기농장에 대해서도 농장 폐쇄(8.6% - 7.7% - 7.4%), 관행농장으로 운영(68.8% - 64.4% - 54.3%) 등의 의견은 감소했고, 유기인증을 유지해야 한다(22.6% - 27.9% - 38.3%)는 의견은 증가했다. 연구자들은 관행달걀 대비 유기달걀의 DDT 잔류 허용한계에 대해서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차와 3차 조사 사이에 연구자들은 미국에서 유기농산물의 MRL을 20분의 1까지 인정한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그 결과 관행농산물 대비 잔류농약허용한계(MRL)를 20분의 1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13.1% - 24% - 34.7%)이 증가했다.
요컨대 유기농 생산과정에 대한 정보 및 유기농 방식을 고수함에도 부득이하게 잔류농약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제공받으면 소비자들은 해당 유기농산물의 소비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향후 유기농업의 가치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과정이 필요함과 함께, 현재의 잔류농약 검출에 집중하는 ‘결과 중심 친환경농정’을 ‘과정 중심 농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병덕 소장은 “억울하게 피해당하는 농민들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며 “유기농산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돼도 생산과정의 가치는 내재돼 있다. 이젠 유기농산물에 잔류농약이 없다는 전제에서 벗어나, ‘유기농의 생산과정은 건강하고, 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잔류농약이 검출되기도 한다’는 걸 솔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