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9] 농부가 원하는 건

  • 입력 2019.03.10 18:0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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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봄이다. 가지치기를 3주 정도 걸려서 마치고 퇴비를 주당 4kg 정도씩 넣고 덮었다. 한해 과수원 농사일을 시작하면서도 금년에는 또 벌레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지난해처럼 햇살이 너무 강해 열매가 데이지는 않을지, 금년에는 생산량이 톤 단위로 늘어날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판매할지, 무엇보다 가격은 또 얼마가 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과수농 이외 농가는 아직 준비단계이지만 앞집 어르신은 벌써부터 두릅나무 밭을 갈아 주느라 분주하고 옆집 과수원집은 밭에 감자를 심는다고 관리기 돌리고 계신다. 물론 두릅과 감자가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는 이들 농부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데도 농부는 봄이 되면 또 농사일을 시작한다.

농민들은 농촌에 그냥 살면서 농사를 지어 아이들 교육시키고 노후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위험(risk)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그냥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농사는 어떠한 속임수도 편법도 잔머리 굴림도 통하지 않는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 요령부릴 수 없는 매우 정직한 일이 농사다.

이런 그들에게 당장 가장 절실한 도움이나 정책은 무엇일까.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일까,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일까, 농특위의 설치일까, 농업회의소의 설립일까, 스마트팜일까. 이런 것들을 빨리 추진해야 어려운 농민이 살고 농업과 농촌이 살 수 있다는데, 과연 그럴까.

물론 이런 것들도 중장기적으로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농촌과 농업과 농민들은 누가 뭐라 해도 많이 아픈 중환자이다. 하루가 시급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위급한 상태의 농민과 농촌을 어찌할 것인가. 당장 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뭘 바꾸고, 수립하고, 설치하고, 만들면, 농업과 농촌과 농민이 살아날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학자나 관료들의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반성하지만 나도 평생 그러고 살았다. 아파 죽겠다는 사람을 앞에 놓고 빨리 병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환자응급의료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며,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지원금은 어떻게 개편할 것이며, 특별위원회나 환자와의 협의기구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야 할 것인지 등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꼴이다.

위기에 빠진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이들이 죽지 않도록 응급처방을 내리는 일이다. 그 방법은 농민수당일 수도 있고 기본소득일 수도 있다. 많은 논란과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생명의 끈을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 현장농민의 요구는 크지 않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안정적인 가격에 언제나 판매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최대 고충인 위험 관리가 가장 어려우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의미이다. 농정철학을 바꾸든지 말든지, 직불제를 어떻게 개편하든지, 보조금을 얼마로 늘리든지, 농특위를 만들든지 말든지 하는 것은 농민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물건 잘 팔아 주는 것이 최고다. 그것이 농민들의 소박하지만 가장 어려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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