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장 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르포] 이상규 평택농협 조합장 후보 선거운동으로 본 위탁선거법의 한계

  • 입력 2019.03.10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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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3.13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지난 5일 평택농협 본점 앞에서 이상규 후보가 농민들의 손을 잡고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3.13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지난 5일 평택농협 본점 앞에서 이상규 후보가 농민들의 손을 잡고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평택농협 만들겠습니다.”

지난 5일, 새벽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경기도 평택시의 비산사거리. 출근길을 서두르는 차량의 행렬 속에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한 사람이 있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평택농협 조합장에 출마한 이상규 전 평택농협 감사다.

미세먼지주의보 속에서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활짝 웃으며 운전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전 감사. 인사차 맞잡은 손엔 아침 칼바람의 한기가 가득했고 양 볼도 붉게 물들었다.

그와의 첫 대면에서부터「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에 가로막힌 선거운동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합장선거는 일반 선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피커와 유세차량을 쓸 수 없다. 게다가 주변엔 피켓을 들어주는 이도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이도 없었다. 위탁선거법에 의하면 모든 선거운동을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한다. 부모나 아내, 자녀 등 가족 누구도 도울 수 없다.

새벽 인사를 마친 그로부터 조합장선거에 나선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90년대부터 농사를 지으며 농민회 활동을 해온 그에게 각박해져만 가는 농업·농촌·농민의 현실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가는 농협에 대한 물음표는 당연했다. 직접 뛰어들어보자는 생각에 감사에 도전했다. 주변에선 어렵다는 말이 많았지만 여러 지역문제 해결에 있어 그 실무를 도맡았던 진정성이 통했다. 두 차례의 아쉬운 낙선은 있었지만 세 번째 도전에서 당선됐다. 감사 임기 시작 첫해인 2016년엔 평택농협 지점 인근에 농협은행 지점이 일방적으로 들어서는 걸 막아내는데 앞장섰다. 이후 평택농협 운영에 있어 비효율적 흐름을 잡아 조합원에게 혜택으로 돌려주자는 생각에 조합장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또한 선거운동의 어려움도 짚었다. 이 전 감사는 “보통 선거를 1년 전부터 준비하지만 조합장에 출마하겠다는 말도 그 어떤 포부도, 농협의 미래상도 밝힐 수 없다”며 “선거운동 기간 전부터 문제”라고 했다. 깜깜이선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에 반해 현직 조합장은 농협의 모든 사업이 이미 선거운동이다. 기부행위를 금지하지만 농협의 이름으로 조합원들에게 선물을 준다. 조합장 이름이 적혀 있지 않지만 조합장이 주는 것이라 이해하는 게 현실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되고서도 문제는 계속된다. 호별방문이 안되는데 과수원이나 축사도 호에 포함될 수 있어 조합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힘든 게 조합원을 만나는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오히려 음성적 선거운동이 조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전 감사는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직선거법처럼 예비후보자제도를 도입하고 선거운동의 폭을 가족까진 넓혀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처럼 50만명의 평택시민 중에 3,500여명의 조합원을 찾아내는 것이다. 100명으로 환산하면 1명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평택농협 본점 앞으로 이동한 이 전 감사가 명함과 피켓을 챙기며 전투준비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정신없이 전화기가 울리는 통에 목에 걸고 있던 핸즈프리도 뺐다. 어르신들이 좋지 않게 볼 수 있어서다. 영농자재를 신청하는 철이라 평택농협 앞엔 비료 등이 쌓여있었지만 지나는 조합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평택농협 앞을 시작으로 인근 통복시장을 크게 돌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손으론 피켓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명함을 건네는 기술에서 ‘나홀로 선거운동’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간간히 응원 소리가 들렸지만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입소문이라도 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즐겁게 하는 사람 앞에 장사없다”며 목소리톤을 더 높였다. “응원해 주시면 순수한 조합원이 조합장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이 전 감사는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지제2동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선거운동의 한계는 끝이 없었다. 후보자 등록을 하면 선거인명부를 받는데 이름과 생년, 주소만 있을 뿐 전화번호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가능한 선거운동엔 전화연락이나 문자발송이 있지만 연락처가 없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개인정보라 유출할 수 없다면서 평소에 관계를 다져서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선거운동을 SNS에 올리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 이를 공유하면 위탁선거법 위반이다. 이 전 감사는 “SNS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은지 오래인데 공유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성토했다.

그는 그나마 평택농협에선 돈선거 분위기는 없다고 전했다.

위탁선거법의 한계 속에 현직 조합장에 맞서 어려운 도전에 나선 이 전 감사. 그는 “기득권의 벽을 깨는 건 쉽지 않겠지만 지역사회에서 20년 이상 농사지으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그걸 평가받는 자리”라며 “당선이 목표지만 안 되더라도 당선자는 제가 공약한 수준 이상을 해내야 할 것”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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