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미세먼지 속의 농민

  • 입력 2019.03.10 18:00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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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며칠째 해가 뜨는지 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온 세상이 희뿌옇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날들은 없었다. 볕이 드는 돌담 밑에서 빨간 벽돌가루를 고춧가루인양 소꿉놀이 하던 날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그 아지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란 개나리보다 더 노랗던 3월 봄빛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친구 손잡고 소풍가다가 올려다봤던 우물처럼 깊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갔을까?

가능하면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미세먼지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비닐 밑에서 쳐들고 올라오는 풀이 한시가 급해서 양파 밭에 앉아 ‘실외활동’을 하자니 누구한테 인지도 모르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구름보다 더 두껍게 낀 미세먼지가 내 폐 속까지 파고든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일을 안 하고 먹고 살 수는 없으니.

이럴 때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 200만 명이 넘는 농민으로 만들어진 농업협동조합이라면 어떡해야 할까? 이런 미세먼지 속에서도 야외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을 위한 어떤 대책이라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미세먼지 차단 방제복이라도 농민들에게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삼성그룹을 능가하는 480조의 대규모 자산이 있다고 자랑만 하면 무엇하나? 조합원인 농민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을.

미세먼지 속에서도 바깥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농민의 신세타령을 하다가 갑자기 농협을 들먹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요즘 농촌은 다가오는 3.13 조합장선거로 떠들썩하다. 누가누가 출마 했느니, 조합장선거는 다 돈선거라느니, 돈으로 표를 센다느니 소문도 무성하다.

실제로 우리 지역에서는 예비후보자가 금권선거운동으로 구속되었고 수십여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경찰조사를 받는 등 심각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돈을 그렇게 써서라도 왜 그렇게 조합장은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농협에 대해 내 심사가 끓는 이유는 이것 말고 또 있다. 우리 조합은 지금 대의원선거 기간이다. 그런데 이 선거가 기가 막히다. 여성대의원 할당제로 각 영농회별로 여성대의원을 1명 이상 선출하고 있는데 이 절차가 민주적이지 못하다.

우리 지역을 보면 이장이나 마을에서 말발이 있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동회 등에서 여성대의원을 지명하기도 하고 전체 여성조합원들의 참여나 의사가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끼리끼리 서로 밀어주거나 번갈아 가면서 맡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금 오른 대의원 회의비 때문인지 서로 하려는 기 싸움까지 치열하다. 

전체 대의원을 대신해서 조합의 운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니만큼 책임감과 능력을 가진 대의원, 여성대의원이 선출되면 좋은데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로는 어렵다. 농협은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로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합장은 과연 똑똑한 대의원을 원할까? 

이런 선거제도에 대해서 지역농협에 문의를 했다. 지역조합 담당자의 대답 “마을에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런 대답은 농협중앙회에서도 들었다.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여성참여를 독려하고 여성임원과 여성대의원을 늘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더니 농협중앙회 책임자 왈 “지역농협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과연 농협중앙회는 여성들의 참여와 여성임원을 원할까?

온통 잿빛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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