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가족계획④ 범정부적으로 ‘정자’를 차단하다

  • 입력 2019.03.1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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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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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족계획협회는, 두 자녀 갖기 운동에서 하나만 낳자는 쪽으로 캠페인 구호를 바꾸는데, 대표적인 표어가「둘도 많다」와「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이었다. 그 무렵에 매우 공격적인 포스터 하나가 등장했다.

둥그런 지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박쥐 떼처럼 다닥다닥 몸을 포갠 채 아우성치며 매달려 있고, 미처 매달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주 공간으로 떨어져 내리는 형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 옆에다「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달아놓았다.

‘셋만 낳자’에서 ‘둘만 낳자’로, 그리고 다시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자’로 슬로건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슨 재주로 생기는 아이를 마음대로 조절한단 말인가.

박정희 정권 초기의 어느 날,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주최한 인구문제 세미나에, 경제기획원 차관 김학렬이 참석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 그는 가족계획협회 사무총장 김용환과 이런 얘기를 나눈다.

“김 총장, 손에 들고 있는 게 무어요?”

“아, 이거 말입니까? 이게 바로 여성들의 피임도구로 쓰는 루프라는 겁니다.”

“아하, 그래요? 루프라…나도 구경 좀 합시다. 어디 이리 한 번 줘 보시오.”

“차관님, 가족계획 사업에 꼭 필요한 시술도구입니다. 정부 예산으로 이 루프를 만 개만 도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가족계획을 위해서라면…까짓것, 만 개가 뭡니까. 5만 개를 도입해서 지원하지요.”

김학렬은 즉석에서 루프 도입에 필요한 예산지원을 약속했다. 그 만큼 가족계획 사업은 말이 민간운동이지 범정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경제기획원 차관 김용환은 그 뒤부터는, 그 여성용 피임기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산아제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보건사회부에서는 전국 183개 보건소에 가족계획 관련 요원을 2명씩 따로 두었고, 전국 1,473개 읍면에도 가족계획 계몽요원들을 배치했다. 그와 별도로 내무부에서는 전국의 모든 단위부락에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하게 했다. 농구경기 용어를 빌리자면, 아이를 덜 낳자는 산아제한 캠페인에 정부부처를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가히 ‘올코트 프레싱’을 구사한 셈이었다.

가족계획을 위한 행사라면 군부대도 예외 없이 차출되었다. 읍내에서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앞장서 나가면, 어머니회 회원들이 “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 년 앞선 생활안정!” “적게 낳아 엄마 건강 잘 키워서 아기 건강!” 따위의 구호를 외치며 뒤따랐다.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 거리풍경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식으로 대국민 계몽에 열중하면서 루프나 피임약 등을 통한 임시적인 피임법을 전파하는 것을 주 활동으로 삼았다. 본격적인 영구피임 운동을 벌인 것은 1970년대였다. 그 시절 젊은 부부 사이에 이런 티격태격이 있었다.

“여보, 이웃집 두칠이 애비도 그 거시기, 그 수술을 했다던데….”

“나는 안 할 테니까 당신이 하라구.”

초기부터 가족계획운동에 종사해온 천을윤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정관시술은 그야말로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면 해낼 만큼 간단해요. 그에 비해 난관시술은 꽤 복잡하고 받는 사람에게도 더 고통스럽거든요. 그럼에도 남성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정관수술의 실적은 미미했어요. 그러자 정부에서는 도시 지역의 각 보건소에 파견된 가족계획운동 요원들에게 할당량을 지정해 주고 희망자를 모집해오도록 강요하다시피 했어요.”

가족계획운동 요원들은 제 가끔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거리마다 책상을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매우 적극적으로 그 ‘국가적인 사업’에 동참하도록 호객(?)을 했다. 실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예비군 훈련장을 공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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