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료와의 싸움에 직면한 공익형 직불제

  • 입력 2019.03.03 19:13
  • 수정 2019.03.03 19:17
  • 기자명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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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심화되는 농업·농촌 위기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면서 농업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농축산물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농축산물 수입액은 352억7,000만달러로 2017년의 322억5,000만달러보다 9.4% 늘었다.

농산물 수입증가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배추·무·양배추에 이어 대파·시금치·애호박까지 겨울철 대표 농산물들이 전부 폭락했다. 고소득작물이었던 시설원예 재배 파프리카와 토마토도 최근 몇 년간 가격이 하락하여 수익성이 나빠졌다.

농산물 가격의 실질적 하락 탓에 농가소득 수준은 악화되었다.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1993년 95.5%에서 2007년 73%, 2016년 63.5%로 낮아졌다. 이농이 격화되어 농림어업취업자 비중은 1990년 17.9%에서 2017년 4.8%로 하락했고, 농가인구는 1995년 485만1,000명에서 2017년 242만2,000명으로 감소했다.

젊은 층이 농촌을 떠난 결과 농업경영주 연령 65세 이상 농가 비율이 2015년 53.5%에서 2017년 58.2%로 늘어났고, 경영주 평균 연령도 같은 기간 65.6세에서 67세로 높아졌다. 농촌 일손 부족으로 농지 유휴화도 심각하여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경지면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경지면적은 159만6,000㏊로 전년보다 2만5,000㏊ 감소했는데 그중 유휴지 증가에 의한 것이 9,900ha에 달했다.

농업위기에 대응하여 문재인정부는 농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대통령과 농업계 인사들의 간담회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개방화 이후 경쟁력·효율성을 강조한 그간의 농정은 선도농 중심의 규모화·전문화에 기여하였으나 농약·비료 등 투입재 과다 사용 등으로 농업 본연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도농간 농가간 소득격차 심화, 청년층 비중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진단을 기초로 문재인정부는 네 가지 농정개혁 중점과제를 추진한다고 했는데 그 중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 개편이다. 농가소득문제 해결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도를 높이고 농업소득을 늘려 농업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농정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직불제 확충을 중심으로 한 농가소득 증대정책이 절실하다. 이것은 선진국형 농업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유럽연합(EU)은 1990년대 초반에 직불제 중심 농업정책으로 전환했다. 점차적으로 농산물 목표가격을 낮추면서 직불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다가 2000년대에 목표가격을 없앴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역대 정부 동안 수입개방, 구조개선 촉진 등 시장지향적 농업자립정책으로 바로 넘어가면서 생략되었던 소득보장적 농업보호정책을 이제라도 시행해야 한다.

심각해진 농업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에 대해 생산비를 보전하는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농가로 하여금 농업생산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도시 근로자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일부를 공익형 직접지불 내지 농민수당으로 보충해줘야 한다.

공익형 직접지불 확대

문재인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농정개혁 핵심과제는 ‘직불제 개편’이다. 정부가 제출한 직불제 개편안에는 모든 직불금을 통합해 작물 관계없이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금액은 0.5ha 기준 80~120만원 정도로 검토 중이며 경영규모에 따라 단가를 차등하되 규모가 작을수록 단가를 높이고 규모가 크면 단가를 낮추는 역진적 체계를 가져갈 예정이다.

또 영농종사기간과 농외소득 등의 기준을 설정하려 한다. 농업의 생태·환경 관련 공익적 기능에 대한 상호준수의무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공익형 직불제를 확대하고, 쌀 변동직불제는 폐지한다는 것이다.

쌀 변동직불제 폐지의 근거로는 현재 상위권 7% 농가가 직불금의 38%를 수령하고 있으며, 쌀 목표가격이 높으면 쌀 생산량이 더 늘고 이는 쌀값 폭락으로 이어져 결국 쌀 직불금 지급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익형 직불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쌀 변동직불제는 폐지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작목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TF는 직불제 성격을 ‘농가소득 보전’에서 ‘농업활동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불제(농업직접지불제)의 명칭도 ‘농업기여지불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농정개혁TF는 현재 8개인 직불제를 2개로 단순화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가격하락 문제는 수입(收入)보장보험 같은 별도의 정책수단으로 해결하고, 직불제는 환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단순화하자는 것이다.

농산물 수입증가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심화되는 농업·농촌의 위기에 대응해 농정개혁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그 중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 개편이다. 지난 18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배추밭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로 겨우내 정성껏 키운 배추를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산물 수입증가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심화되는 농업·농촌의 위기에 대응해 농정개혁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그 중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 개편이다. 지난 18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배추밭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로 겨우내 정성껏 키운 배추를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수당은 공익형 직불로 흡수

지방자치단체들에서 공익형 직불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농민수당이 도입되고 있다. 전남 강진군은 2018년부터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1,000㎡ 이상 농사를 짓는 7,100호 농가에 균등하게 1년에 70만원을 논밭경영안정자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명칭만 농업경영인안정자금일 뿐 내용은 농민수당과 같다. 지급형태는 35만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예산규모는 기존의 38억원에 50억원을 추가해 88억원에 이른다.

해남군은 2019년부터 지역내 전 농가를 대상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키로 하고 조례를 제정했다. 지원금액은 연 60만원을 지역상품권으로 농가별 균등 지원하고 연간 예산은 약 90억원으로 예상한다. 그 외 전남북을 중심으로 여러 시군에서 농민수당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업 비중이 크지만 재정능력이 취약한 농촌지역 지자체에서 다급하게 추진하다보니 지불액이 너무 소액이다. 농민수당 지불은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농민수당을 공익형 직접 지불에 흡수하는 것이 타당하다. 경작규모 1~2ha까지는 직불금을 농가당 연간 240~600만원(월 20만~50만원)으로 하고 그 이상 규모에 대해서는 ha당으로 체감식으로 지불하면 농민수당의 의의를 살리면서 하후상박의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공익형 직불 내지 농민수당과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 모든 농가에게 준다고 하니 대상 가구가 인위적으로 세분화돼 농가 수가 많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노령 임대농가가 임차농가로부터 임차농지를 회수하여 농업경영체를 등록하는 갈등이 벌어진다. 공익형 직불 수급자를 심사하는 절차와 기구가 필요한데 관료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농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공익형 직불을 확대할 때 소요되는 재원이다. 농식품부는 공익형직불제 예산목표를 3조원으로 잡고 내부적으로는 2조3,000억원을 편성한 후 국회 심의과정에서 플러스 알파를 뽑아낸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쌀 직불제든, 공익형 직불제든 1조8,000억원 이상은 안된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100만 농가를 대상으로 호당 최저 240만원이면 2조4,000억원 이상, 최저 360만원이면 3조6,000억원 이상, 최저 600만원이면 6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기존 예산에서 비효율적으로, 또 소득양극화를 부추기는 편파적인 방향으로 사용된 예산을 줄여서 직접지불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시설 및 자재 지원은 선정된 소수 상층농가에 대한 특혜가 되고, 지원이 농가소득의 실질적 증가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또 무역이익공유의 취지에 따라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자발적이 아니라 법률적 의무로 조성하여 공익형 직불 확대에 충당할 수 있다.

가격변동 대응 직불 확대

공익형 직불 전면 도입과 함께 현재의 가격변동 대응 직불을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직불제 개편 과정에서 가격안정을 위한 보완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농산물 가격변동 직불을 공익형 직불과 병행해야 한다.

쌀에 편중된 가격변동 대응 직불을 식량자급률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밀, 콩, 팥, 옥수수, 사료작물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GS&J의 추정에 의하면 가격변동 대응 직불의 대상품목을 현재 재배면적, 생산량, 농가판매가격 또는 도매가격에 통계가 갖추어진 모든 농산물로 확대할 경우 소요되는 예상금액은 최대 2조7,000억원(2020년 시행 가정)이다.

시간과의 싸움

농업위기는 심화되는데 문재인정부 농정개혁은 지지부진하여 좌초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정부는 이달 말에 2020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 운영계획안 작성지침을 확정해 예산안 편성심의에 들어간다. 

지난달 26일 국가재정운용계획 작업반이 가동을 시작했다. 2019~2024년 정부 재정의 기본틀을 짜는 작업반은 4월까지 청와대와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재정전략회의 의제를 지원하고 6월까지 중간보고서를 제출한다. 4월 농특위가 뒤늦게 출범하면 직불제 개편 등 농정개혁안을 내놓는데 최소한 수개월이 걸릴 것이고, 이것은 9월 국회에 제출되는 2020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되기 어렵다.

너무 느린 진행으로 중간에 문재인정부의 국정동력이 약화되면 현행 예산 규모 내에서 형식적 개편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직불제 개편안은 지난해 11월 국정기획위원회 농정개혁TF가 작성한 안을 보완하면 빠르게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이를 2020년 예산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관료와의 싸움

현재의 농업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설계주의 농정에는 관료 등의 권한이 크게 작용한다. 사업을 기획하고 신청자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농림축산식품부에 집중적으로 로비를 한다. 지방자치단체 농정관료들도 사업신청 심사와 선정에 권한이 있다. 설계주의 농정 하에서는 관료들과 지원을 받는 상층 농가와 농축산 시설 건설업자와 자재 제조업자 3자간에 긴밀한 협력 관계가 형성된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시설을 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자부담으로 하는 경우에 비해 20~30% 더 많다. 비용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책정하여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때로는 횡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농정 관료들은 지연작전 등을 통해 설계주의 농정을 축소, 폐지하는데 저항할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데는 농민뿐만 아니라 대통령, 정부, 여당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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