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다시 신발끈을 묶으며

  • 입력 2019.03.03 19:08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씨감자 주문하신 분들 마을회관에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마을방송이 새벽을 열고 있다. 올해는 씨감자 채종지인 강원지역이 태풍 피해로 수확이 늦어진데다 작황도 좋지 않아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한다. 차를 몰고 회관에 가니 부지런한 울엄니들 벌써 나와 계신다.

“20키로 신청했는데 10키로만 주면 어쩌라고.” 예상은 했지만 씨감자를 더 가져가려는 아니 신청한 만큼이라도 줘야지 하며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장님은 단호하게 신청 물량의 절반씩만 드릴 수 있다 한다.

“올해부터는 농사를 절대 짓지 않을 거야” 하셨던 하대댁 할머니를 비롯해 마을의 꼬부랑 할머니들 모두 손자들 주게 적어도 신청 양만큼 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보탠다. 감자가 이리도 인기가 있는 작물이었구나 싶다.

꾸역꾸역 4kg을 배정받아 왔다. 절반에 못 미치는 양이지만 입 한 번 열지 못했다. 울엄마는 아마 눈 하나하나 꼼꼼하게 쪼개시겠지? 눈 떼고 남은 조각, 아마 점심은 감자밥일 거야! 볏짚을 태워 재도 만들어 놓으셨으니 쪼갠 감자를 골고루 재에 바르겠지? 머릿속 오만가지 상상으로 가득하다.

“누구 입에 풀칠하라고 이리 코딱지만큼 받아 왔냐.” 쉼 없이 잔소리를 하신다. 아마 오늘 아침 들은 소리가 어제 하루 종일 들었던 말보다 더 많을 듯 싶다.

감자가 씨감자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여름에 캔 감자를 다시 심어 서리 내리기 전 캐야 한다. 두벌감자로 불리었고 누구나 두벌감자를 심어 다음해에 심었는데…. 언제부터 씨감자는 꼭 사야 했을까? 정부보급종 감자라는 이름으로 씨감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 굳이 집집마다 씨감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

어머님이 물려준 홍감자를 몇 해 다시 심어 씨감자로 만들었는데 지난여름에 다시 심지 않았었다. 때를 놓치기도 했지만 귀찮은 맘이 더 컸다. 씨앗을 채종하고 다음 해에 씨앗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 후과가 올 봄 첫 농사에서 시작된다. 농부의 손을 떠난 씨앗이 어떻게 농부에게 부메랑이 되는지….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받고, 다시 그 씨앗을 심어 가는 과정이, 농부가 되는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실종되어 버린 요즘 농사에 문득 소름이 돋는다.

“생명을 담은 토종씨앗 함께 지켜요.” 다시 신발끈을 묶어야겠다. 누구나 필요한 곳에 나눔 할 수 있게,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시작한 씨앗의 대물림을 내 세대에서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딸에서 딸의 딸에게로 수천수만 년 농부의 지혜를 고스란히 물려줘야 한다.

겨우내 텃밭을 지켜온 시금치의 꽃을 피우자. 대파의 꽃을 피우자. 채소의 꽃을 피우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