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가족계획③ 「표어」로 읽는 가족계획

  • 입력 2019.03.03 19:0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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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가족계획의 주요 홍보수단인 표어와 포스터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이 운동을 추진하는 쪽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산아제한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알 수 있다.

1963년에 처음으로 전국가족계획대회를 개최했는데 그때 행사장에 내건 표어는「우리 집 행복은 가족계획으로」였다. 다음 해에 열린 제2회 대회에서는 가족계획협회가 공개모집을 했다. 5,000여 편의 응모작 중에서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라는 표어가 뽑혔다. 매우 점잖고, 다소 밋밋하고, 더불어 좀 진부한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아라 말아라, 하고 명령 투로 강압하는 것은 계몽이 아니지요. 정부에서 부부의 성생활까지 이러쿵저러쿵 강제한다는 반발을 살까봐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어요.”

가족계획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천을윤 씨의 얘기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표어나 포스터에서 몇 명을 낳으라거나 몇 명 이상은 낳지 말자는 식의 숫자개념으로 홍보를 한 게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자녀를 낳아서 훌륭하게 잘 키우자는 호소를 담고 있었다.

그러다 1966년에 이르러서는 다소 구체적이고도 공격적인 내용으로 슬로건이 바뀐다. 협회에서 홍보 전략회의가 열렸는데, 논의 내용이 이러했다.

“막연하게 적당히 낳자, 알맞게 낳자,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몇 명을 낳자고 아예 숫자로 못을 박아서 홍보를 할 필요가 있어요.”

“한 가정에 네 명 정도면 알맞지 않을까요? ‘자녀 네 명 갖기 운동’을 하면….”

“그럼 세 자녀밖에 없는 사람한테는 일부러 한 명씩 더 낳으라는 얘기가 되는데?”

“요즘 세상에 자식이 셋 밖에 없는 집이 얼마나 됩니까.”

“아예 과감하게 세 명으로 줄입시다. 그래야 인구증가 그래프를 꺾을 수 있어요. 그리고 무턱대고 셋만 낳자고 할 게 아니라, 적당한 출산 터울을 제시해 주는 건 어떨까요?”

“그게 좋겠어요. 연년생으로 출산을 하게 되면 산모 건강도 문제고, 또 육아나 교육에도 부담이 되니까 3년 터울로 낳자는 운동을 함께 벌이기로 하지요.”

이렇게 해서 1966년에 생겨난 캠페인이 바로 ‘3-3-35 운동’이다.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고 단산하자는 것이었다. 노래도 만들어졌다. 박목월이 가사를 쓰고 손석우가 곡을 붙인 ‘사랑의 열매’(일명 ‘가족계획의 노래’)가 그것이다. 가사에 ‘한 개씩 3년마다 열매가 여는…’이라든가 ‘하늘의 삼태성은 삼남매지만…’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다소 억지스럽단 느낌이 든다,

우리들의 귀에 익은 ‘두 자녀 갖기’ 표어가 처음 선보인 때는 1971년이었다. 그러니까 1964년부터 만7년 동안 ‘세 자녀만 낳자’는 캠페인을 벌인 셈이다.

1971년의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표어는「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가족계획협회에서 ‘3-3-35’ 운동을 폐기하고 두 자녀 갖기로 자녀의 수를 낮춰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 표어는「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아들과 딸의 위치가 바뀌었다, 딸만 있는 집안에서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출산을 거듭하는 남아선호 풍조가 인구증가의 또 다른 요인이었으므로, 과감하게 딸을 앞에 두기로 한 것이다.

2002년도에 내가 서울 영등포에 자리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에 취재차 들렀을 때, 사무실 복도에는 가족계획협회 홍보모델이었던 차범근 선수 부부가 딸과 함께 웃고 있는 빛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하나만 더 낳고 그만 두겠어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차 선수는 딸 ‘하나’에 이어 아들 ‘두리’를 낳고, 아들 ‘세찌’를 또 낳았으니 순전히 파울 플레이를 한 셈이다.

1980년대 들어서 드디어 ‘하나 낳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때 나온 대표적인 표어가 바로「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다. 어느 날 TV에 나온 코미디언이 이를 비꼬아 이렇게 말했다. “까짓것, 한 집 걸러 하나만 낳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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