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이하 상속 농지, 농사안지어도 된다?

대법원 판결에 누더기 농지법 한계 ‘절감’
전농 “농지 투기 부추기는 위험한 판결” 비판

  • 입력 2019.03.03 18:00
  • 수정 2019.03.03 19:3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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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지의 비농업적 이용에 손을 들어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상속받은 농지가 1만㎡ 상한선 이하라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계속 소유할 수 있고 처분의무 대상도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신모씨는 부산 강서구에 상속받은 밭 2,158㎡(700평)를 소유하고 있었다. 강서구청은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농지이용실태조사를 한 결과 신모씨의 밭이 농업경영에 이용되지 않고 공장 부지나 물건 적재 등의 용도로 사용한 사실을 적발해 2017년 6월 14일까지 농지를 처분하라는 ‘농지처분의무통지’를 내렸다. 만약 이를 어길시 농지법 제11조 규정에 따라 처분명령 조치가 이뤄지고 농지법 제62조에 따라 공시지가의 100분의 2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매년 부과된다는 것도 통지했다.

신모씨는 강서구청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여겨 법원에 ‘농지처분의무통지 취소’ 소송을 했다. 1심과 2심 모두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1·2심에서는 국가는 경자유전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국민 식량공급과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기반이며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돼야 한다는 점 △투기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 등에 비춰 농지를 소유하게 된 이유에 관계없이 1만㎡ 이하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농지처분의무부담이 타당하다고 봤다. 농지는 본래 목적인 농사에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농지법상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는데, 상속농지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지난달 14일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일정한 면적 범위 내 상속한 비자경 농지의 소유를 인정하는 근거는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함인데, 상속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소유 상한 범위 내 농지를 소유할 근거가 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을 경우 모든 상속농지가 처분의무 대상이 된다고 본다면 굳이 소유 상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현행 농지법상 농지에 대한 상속이 계속되면 비자경 농지가 향후 점차 늘어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이 문제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 원칙이 조화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업생산성을 높인다거나 경자유전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상속으로 취득하는 1만㎡ 이하 농지에 대해서도 농업경영을 하지 않으면 농지처분 의무가 있다고 새기는 것은 입법론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행 농지법 해석론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행덕, 전농)은 지난달 27일 ‘경자유전의 헌법 정신을 뒤집는 대법원 농지 판결 규탄한다’는 비판성명을 내고 즉각 반발했다. 전농은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상속받은 농지는 휴경을 하든 공장건물을 짓든 또 산업폐기물을 쌓아 놓든 처분통지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농지는 농업경영을 위한 것이며 농업경영의 담당자인 농민 소유가 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대한 위반이다. 아울러 농지를 불법으로 형상 변경하여 훼손한 행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불법 전용을 합법화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판결이다”고 개탄했다.

이어 “대법원의 판결은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고, 식량주권을 지킬 최소한의 농지보호의 안전판을 제거한 판결이다. 농지 보호를 포기한 것은 농민의 권리를 포기한 것과 같다”며 “전농은 경자유전의 원칙 확립, 직불금 부당수령 근절 대책 수립, 임차농 보호 대책 수립을 오랫동안 요구해 왔다. 앞으로 농지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농지이용실태 전수조사, 현장농민이 참여하는 농지관리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26일 민중당 전남농민위원회도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1만㎡ 이하의 농지를 상속받은 비농민은 농지규제가 훨씬 자유스러워지면서 재산투기에 적극 나설 길이 열렸고 나아가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은 더욱 누더기가 될 위기에 놓였다”면서 “대법원이 농지의 기초적 지식도 없이 농지법을 해석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아울러 “경자유전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농지법 개정 작업에 국회와 정부가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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