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 입력 2019.03.03 18:00
  • 수정 2019.03.06 09:3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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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현직 조합장이 이·감사와 함께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관광지와 식당, 노래방에 가 술과 유흥을 즐긴 농협. 비슷한 방식으로 제주도에서 성매매에 나섰다는 농협. 해외연수로 베트남까지 가 집단 성매매를 벌였다는 농협.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드러난 농협의 맨 얼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3월 13일로 예정된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금품살포와 향응제공이 전국에서 버젓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에서 손을 쓰겠다고 나선 건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보도를 한 이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다. 농협은 지난달 20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사고확인 즉시 특별감사를 실시, 무관용·엄정 문책 원칙을 견지할 계획”이라며 “특히, 성관련 사고는 감경사유 적용을 배제, 예외 없이 일벌백계로 중징계 처분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몇몇 농협 조합장의 비위로 농협 전체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제라도 즉각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농협에서 벌어진 횡령이나 배임, 각종 비리에 대해 농협중앙회가 감사를 하고서도 면죄부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기존 관행에 비춰보면 큰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긴급대책회의를 열 정도의 위기감이라면 당연히 선거 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조치가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농협중앙회 회원종합지원부에 기존에 조사·감사·처벌 등의 조치 사항이 있는지 문의한 결과 “아직까진 그런 사안이 발생하지 않아서 긴장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법적 처벌이 완료되기 전까지 농협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답변도 고장난 라디오처럼 되풀이 됐다. 답답한 심경에 몇 개 농협의 대표적인 사건을 읊으니 담당자는 그제서야 “A농협 건과 관련해서 자금 회수에 나섰다”고 했다. 많은 사건들 중에 단 1건이다.

농협중앙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서 치르는 선거도 이럴 진데 지역농축협이 자체적으로 치르는 이·감사, 대의원 선거는 오죽할까. ‘쩐의 전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닐 것이다.

김 회장이 올해 초 발표한 주요목표 중 하나가 100년 농협의 토대를 쌓겠다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농협중앙회가 기초를 튼튼히 하려면 결국 지역농협이 바로 서야 한다. 그러려면 긴급대책회의에서 밝힌 대책들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돼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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