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듯 농산물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배추·무·양배추에 이어 대파·시금치·애호박까지 겨울철 대표 농산물들이 전부 폭락했다. 배추와 양배추·시금치는 특히 심각해 평년대비 반토막 이하의 가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햇조생 수확을 앞둔 양파 가격도 처참한 수준이며, 뒤이어 나올 마늘까지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난적인 폭락사태지만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느긋해 보인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폭락 해결에 나서기보다 산지에 자구적 역할을 더 많이 요구하고, 이를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대책을 결정하는 식이다.
결과는 안타까울 뿐이다. 산지의 자구책이라고 해봐야 그 규모와 능력엔 한계가 명확하다. 얼마 안되는 물량을 자율폐기해봤자 떨어진 가격은 미동도 않는다. 뒤늦게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추가 산지폐기를 진행하지만, 이미 대책의 적기를 놓쳐 이 또한 부질없는 일이 된다.
정부 산지폐기 예산은 일부 플러스 요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매년 70억원으로 편성된다. 공격적인 수급정책을 펴려야 펼 수가 없는 액수다. 최근 때늦은 겨울배추·겨울무 폐기를 진행하면서 벌써 예산의 절반가량을 소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양배추·시금치·애호박 같은 비주류품목엔 아예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예산을 따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가 오히려 70억원 예산 안에서 농민들을 옥죄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UR과 각국 FTA 타결 이후 그동안 농식품부는 형식적으로나마 농산물 폭락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산지로 돌리고 있다. “정부가 과잉생산의 책임까지 떠안을 순 없다”, “정부의 산지폐기는 가격을 올리기 위한 게 아니라 적정한 관리를 위한 것”이라는 관료들의 말이 공식·비공식석상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는 것이다.
초과공급물량의 80%를 산지와 불확실한 수요확대에 맡겨버렸던 지난해 양파·마늘 수급대책은 이같은 농식품부의 정책기조가 반영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대책을 전후로 농식품부의 폭락 대책엔 ‘산지 자율폐기’가 핵심항목으로서 빠지지 않고 있다. 올해 배추·무 수급대책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양파 수급대책도 또다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폭락의 원인이 농민들의 과잉생산에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잉생산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정부의 개방농정과 수입 폭증, 이로 인한 만성적 공급과잉과 전 품목 도미노 피해까지, 결국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입에 밀려 모든 품목이 과잉된 현재 우리 농업은, 흉년이 들어야만 폭락을 면할 수 있는 비통한 처지다.
책임 여하를 떠나더라도 국민의 생존을 담보하는 1차산업이 고질적인 폭락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국에 처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정부는 이를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 먹거리의 공적 보장을 위해 ‘국가푸드플랜’을 구축하겠다는 정부가 당장 눈앞의 생산기반을 등한시한다는 건 이율배반적인 태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