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책임전가에 산지는 ‘기가 막혀’

“폭락 책임은 당연히 정부 몫”

  • 입력 2019.02.2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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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동시다발적 농산물 폭락 사태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의 대응은 올해도 소극적이다. 산지에 수급조절 책임을 대거 부여하고 정부 정책은 뒤로 미루는 모습이다. 산지에선 자연히 불만과 불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의 수급대책은 보통 채소가격안정제 물량으로 시작한다. 올 겨울 배추·무 폭락에 대한 농식품부 초동대책은 채소가격안정제 물량 출하정지 1만7,000톤(배추 1만톤·무 7,000톤)과 수매비축 7,000톤(배추 3,000톤·무 4,000톤)이었다.

반면 산지엔 정부 대책물량보다 더 많은 2만7,000톤(배추 1만2,000톤·무 1만5,000톤) 자율폐기가 할당됐다. 정부 예산투입 없이 지자체·농협·농가가 분담해 폐기를 진행했으며 지역에 따라선 농가 부담이 100%인 곳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를 합치더라도 초동대응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바닥에 붙은 가격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이에 농식품부가 뒤늦게 산지폐기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총 6만6,000톤(배추 4만6,000톤·무 2만톤)의 산지폐기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적기를 놓친 탓에 가격이 좀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와 농협들은 재정적 부담과 함께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김경채 해남 황산농협 조합장은 “자금이 부족한 산지가 자체폐기할 수 있는 물량엔 한계가 있다. 이번에 폐기한 양은 농가 신청량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폐기비용도 넉넉지 않은데 물량마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걸 서진도농협 조합장도 “기껏 하는 산지폐기를 쪼개서 찔끔찔끔 하다 보니 가격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더욱이 (정부 폐기가 진행되는) 지금 시기에 배추는 상품성이 떨어진 물량이 많다”며 답답해했다.

더욱 불만이 집중되는 부분은 농식품부의 책임전가 행위 그 자체다. 최근의 농식품부 수급대책은 기본적으로 폭락상황에 대한 산지의 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양파와 올해 배추의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전남 양파 농가들이 장관을 면담하며 선제대책을 요구했지만 대책은 또다시 조생양파 ‘산지 자율폐기’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양배추·시금치 등 상대적 비주류 작목들은 대책에서 누락됨에 따라 산지가 전적으로 책임을 떠안고 있는 처지다.

고창덕 전농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양배추를 두 차례나 폐기하는 과정 속에 정부는 쏙 빠져 있다. 제주 농민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어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데, 오히려 제주 조생양파 1만6,000톤 폐기를 또 떠맡기려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무진 전농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지금 겨울채소 폭락은 100% 수입 때문이다. 지난해 양파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늘어났다는 건 구입 구매처가 점차 견고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역시 정부 책임을 강조했다.

지난 11일 농식품부와의 양파 수급대책 회의에 참석했던 전영남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회의에서 농식품부 측이 ‘과잉 책임을 누가 지어야 하느냐’고 묻더라. 농민들 책임이라는 말이었다.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고 말했다. 전 조합장은 “다른 농산물이 가격만 된다면 왜 양파를 짓겠나. 모든 농산물이 도미노식으로 무너지고 지어먹을 농사가 없지 않나. 과잉생산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각 지역마다 농식품부 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실질적인 폐기대책과 아울러 농업직불제 개편·기초농산물 공공수급제 등 농가소득과 농산물가격을 지지하기 위한 근본대책에 대한 요구도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다. 농민들은 다음달 중순경 대규모 집회를 통해 정부에 구체적인 목소리를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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