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갈아엎어야 할 것

  • 입력 2019.02.24 18:00
  • 수정 2019.02.25 09:4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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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결국 갈아엎었다. 배추가 가득했던 그 넓은 황토 들녘을 트랙터가 내달렸다. 싱싱했던 배추가 트랙터에 달린 로터리 날에 짓이겨졌고 노란 배춧속은 황토와 뒤범벅됐다. 산지폐기라는 이름으로 6,600㎡ 배추밭을 갈아엎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즈넉했던 풍경은 순식간에 을씨년스러워졌다.

월동배추 주산지, 전남 해남의 들녘 곳곳에선 이질적이게도 수확의 풍경과 갈아엎는 풍경이 교차하고 있었다. 산지폐기 현장을 관할하는 농협 직원은 갈아엎는 모습을 증거(사진)로 남긴 뒤 “바쁘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현장으로 이내 사라졌다.

10kg당 2,000~3,000원. 평년 대비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 배추가격에 농민들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작황이 증가하고 소비가 줄었대도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가격폭락은 예상치 못했던 거였다. 정성껏 기른 배추를 찰나의 순간에 짓이기는 행위 자체가 농민들에겐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난해 김치 수입량은 역대최고치를 경신했다. 29만742톤, 배추로 환산할 경우 약 65만8,000톤에 달한다. 연간 배추 생산량의 27.6%에 해당한다고 하니 배추를 김치의 주재료라 할 때, 역대최고치를 찍은 김치 수입량이 월동배추 가격에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산지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을진대 개방농정의 수입 기조를 바꾸기는커녕 가격폭락의 책임과 뒷감당을 오롯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농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농(림축산)식품부부터 갈아엎어야 한다”고 일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폭락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업계에 적을 두고 있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알 정도다. 그러나 이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정부의 무책임한 행보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갈아엎어야 할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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