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은 협동이 안 돼 문제가 되는 것”

이 사람 ㅣ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

  • 입력 2019.02.24 18:00
  • 기자명 심증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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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어느 찻집에서 만난 김영재 회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두툼함 봉투에서 농협 관련 서류를 꺼내 놓고 지역농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익산군산축협의 고정자산 취득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을 어긴 여러 가지 의혹이 있다는 이야기다.

“2017년 익산군산축협 임시총회에서 축산물종합판매장 부지 매입을 승인해줬습니다. 그런데 매입 과정에서 갑자기 부지가 건물로 변한 거예요. 그러면 총회에서 용도조정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었어요. 그리고 건물 매입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법인이 설립돼 법인에서 이 건물을 20억에 매입합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축협에서 33억5,000만원에 매입을 합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문제예요. 특히 문제는 익산군산축협이 일련의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농협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농협에서는 부지를 싸게 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할 뿐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조합원 검사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조합원 연서명을 받고 있는데,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선관위에 민원을 제기 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관위에 관련 자료를 전부 보내주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니라 농협 운영에 문제가 있어서 조합원으로써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선관위에서 그러한 활동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해줬어요.”

김영재 회장은 지역농협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합장 또는 농협의 전횡에 가까운 조합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수십억 원이 오고가는 부동산 거래가 투명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익산군산축협에서 벌어진 고정자산 매입 과정의 문제는 절차적 문제뿐 아니라 농협이라는 공공성이 있는 조직이 공공연하게 개인의 탈세를 묵인 또는 동조한 의혹이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인터뷰 내내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협동의 이념과 활동을 배우고 협동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을 할 때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승호 기자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인터뷰 내내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협동의 이념과 활동을 배우고 협동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을 할 때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승호 기자

농협이 중요하다

“농민운동하면서 농협이 농업·농촌·농민에게 얼마나 큰 비중인지 현장에서 보니까 절실하더라고요. 농협은 농민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안 들리고는 못 배겨요. 농촌에서 농협을 빼면 금융, 생활용품 등 농촌이 안돌아가잖아요. 그런데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농촌사회에서 농협은 중추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농민들은 농협이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한다며 질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농협에 관심을 갖고 농협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

“대의원으로 시작해서 이사, 감사 다 해봤어요. 조합장 빼고 다 해본거죠. 농협에 관심이 깊어지고 공부를 할수록 결국 농협 문제는 내 문제였어요. 조합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에요. 농협이 제도나 절차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데, 조합원이 권리 행사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농협 조합원인 농민들이 제도나 절차도 잘 모르거나 그것을 활용하지 못해서 농협을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농협법과 정관에 있는 제도와 절차만 잘 활용해도 농협을 어느 정도는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회장은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을 자청해 농민 조합원 교육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갔다. “협동조합개혁은 조합원의 개혁이 근본이에요. 그래서 조합원 교육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김 회장의 익산군산축협의 부지매입과 관련한 문제제기도 조합원 검사청구권을 통한 합법적인 조합원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농협 조합원이면 누구나 농협 운영에 대해 자료를 요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고 답변과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보장돼 있다.

“고향에 계속 있는 거예요.”

김 회장은 익산이 고향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바로 나고 자란 집이다. “1989년 대학 졸업하고 바로 들어왔어요. 뭐 특별이 농촌에 투신했다는 개념도 아니고 대학 졸업하고 집에 가는 거였어요.”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던 김 회장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농민운동가들을 만나게 됐다. 다들 동네 형님들이었다. “동네 형님들이 넌 졸업하면 들어 오라는 이야기를 계속 했죠.”

지금 사는 집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하면서 그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특별이 들어가고 나가고 한 일이 아니다. 다만 졸업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집에 들어와 사는데 부모님 반대가 심했죠. 아내는 학교도 못 마친 상태고, 애도 있고 한데 부모님께서 지원을 끊어 버리셨어요.”

농사짓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는 3년 만에 아들 내외에 대한 지원을 끊어 버렸다. 돈 벌러 나가겠지 하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었다. 김 회장은 이때 잠시 혼자 시내에 나가 직장생활을 했다. “3~4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버님을 설득했어요. 결국 아버님의 가업을 이어받기로 하면서, 제가 다시 들어오고 아버님이 나가시기로 한 거죠.” 이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익산이 평야지대라고 하지만 김 회장이 사는 마을 삼기면은 중산간지로 농토가 넓지 않았다. “그 당시 황등면에서 50필지 농사짓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어요. 나는 20필지도 안 되는 농사를 지을 때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농업이 피폐화되고 아이러니하게 김 회장의 영농규모는 계속 늘어났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우리농업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는 거예요. 저는 소득을 더 올리기 위해 규모를 키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결국 그 땅을 자연스럽게 내가 농사를 짓게 되는 거예요.”

영농승계 또는 후계인력이 보충되지 않는 농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기계를 부리는 젊은 농민 김영재는 본인의 농사 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의 농사일을 다 해주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모두 농사일정을 내 일정에 맞췄어요. 그런데 자꾸 돌아가시니까 그 땅 다 농사짓게 됐죠. 서글픈 일이예요.”

친환경농사를 시작하다

김 회장이 친환경농사를 시작하게 된 건 친환경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농약을 주고나면 뭔가 불편했어요. 어디가 아프고 그런 거는 아니었는데 느낌이 좋지 않다고 할까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래서 농약을 안주고 농사짓는 방법이 없나 하고 고민하던 중에 정부가 친환경농업을 육성한다고 했다.

이때가 1997년 환경농업육성법이란 이름으로 제정된 친환경농업법이 2001년 친환경농업육성법으로 명칭이 개정되고 다시 5년 만에 개정하여 친환경농업을 새롭게 육성하던 시기이다.

“주변을 살펴보니까 친환경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었어요. 그해 겨울에 친환경농업 기술을 배우러 다녔죠. 홍성에 주형로 선생님, 돌아가신 강대훈 선생님 같은 분들을 찾아가서 기술을 배웠어요. 처음엔 긴장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한해 해보니까 논농사는 친환경으로 하는 게 생각보다 쉬웠어요.” 어렵게 생각했던 친환경농사는 실제 해보니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친환경 농민들을 조직화하고 계약재배 체계를 갖추는 것이었다. “친환경농사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조직화를 시작했어요. 친환경농업작목반을 만들었죠. 작목반 만들어서 농가들하고 익산농협, 농협중앙회와 친환경학교급식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작목반을 이후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나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죠.”

2005년 친환경농업작목반으로 시작해서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나서 2013년에 작목반은 협동조합으로 전환됐다. “협동조합을 하면서 친환경농사도 즐겁게 하고 사람들과 협동하면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줄여갈 수 있는 것이 좋았어요. 협동을 통해서 즐겁게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삶의 방식을 체득해 가는 과정이었죠.”

물론 협동조합 안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들이 생겨나지만 그 속에서 해소해가면서 회원들은 점점 더 성숙해져 갔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연대와 협동의 정신이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농민회 활동을 하는 것도 그렇고 협동조합개혁위원 활동도 협동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고 사회적경제도 그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대단한 훈련이 필요한데 작은 협동조합을 통해서 훈련하고 체득할 때 그런 것이 구현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협동보다는 탐욕과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일상화된 삭막한 사회가 됐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사람의 일은 협동이 안 되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작은 협동조합을 통해서 협동의 이념을 배우고 그러한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을 할 때 사회가 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봄이 되니 머릿속엔 온통 영농계획이

이렇게 시작한 친환경농사로 인해 김 회장은 전북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을 연이어 맡게 된다. 특히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정권교체시인 2017년 초에 맡아 농정개혁의 요구가 높은 격동의 시기에 전국적 농민운동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2018년에는 농민단체 연대조직인 농민의길 상임대표를 맡고 문재인정부에 농정개혁을 촉구하는 선봉에 서게 됐다. “저는 조직적 입장에서는 불운한 사람입니다. 제가 전북친농연 회장과 전국친농연 회장을 맡게 된 것은 그 당시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하지만 김 회장은 지난해 말 농민의길에서 올해 4월 출범하게 될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위원장 후보로 추천됐다. 미궁에 빠진 농정개혁을 위해서는 개혁성과 현장성을 고루 갖춘 김 회장이 적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과거에 농특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현장중심이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이렇다 할 개혁을 이룬 것도 없고 그래서 이번 농특위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농정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농민의길 상임대표를 추천한 것이지, 개인 김영재를 추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추천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특위에 환상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농특위는 농정 전환을 위한 틀을 만들어가는 것과 대통령에게 농정개혁 의지를 어떻게 갖게 하냐가 중요하죠. 여기서 모든 걸 해결할 거라는 환상을 가지면 안돼요.”

김 회장은 올해 농민의길 상임대표 임기도 친농연 회장 임기도 끝이다. 친농연은 연임가능성이 높으나 본인은 빨리 정리하고 내려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이 맘 때가 되면 머릿속에는 온통 영농계획으로 꽉 차 있어요. 올해는 뭘 심고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지 하는 생각에 들떠 있죠. 그런데 임기 마치면 돌아가 농사짓는 것도 뜻대로 못하니 미칠 지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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