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가족계획② 덮어놓고 낳다보면…

  • 입력 2019.02.2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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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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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가장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초반에 걸친 5년여 동안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해방 후, 평균 5년에 한 번씩 전국의 인구를 조사하는 ‘인구센서스’(현재는 ‘인구주택총조사’)가 실시되었는데, 1960년도에 실시한 조사 결과는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55년에 2,150만 명이었던 남한 인구가 5년 뒤인 1960년에 조사를 해보니 약 2,500만 명으로 증가하여, 광복 직전(1944년)의 전국 인구(2,590만 명) 수준에 육박한 것이다. 더욱이 1955년 조사에서는 증가율이 1.1%였는데 60년 조사에서는 무려 3%(정확하게는 2.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때문에 다 이긴 전쟁의 승리를 놓쳤다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때문에 정부도 국민들도 ‘인구가 많아야 강한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또한 전쟁 통에 가족을 잃었으니까 더 많은 자식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고, 물론 농경위주의 사회였던 만큼 일손 확보도 중요했으며, 남아선호 풍조도 인구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1970년대 이래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인구정책 관련 일을 해온 천을윤 씨의 얘기다. 천 씨의 진단은 ‘베이비붐’ 운운하는 전공학자들의 인구사회학적 해석보다는 덜 난해하다. 그러나 나이 든 장삼이사들이 농담 삼아 던지는 전후(戰後) 인구증가 요인의 분석이 더 발랄, 명쾌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남한은 전기 사정이 최악이었어. 부부가 저녁 먹고 나면 껌껌한데 달리 할 일이 있나, 일찍 손잡고 요 깔고 누워야지. 뭐, 누웠다고 잠만 자는 것도 아니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동요 제목) 집에 왜 유독 아기들이 줄줄이 많은지 아느냐, 한때 유행했던 이런 수수께끼 놀음과도 통하는 우스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인구증가 현상에 대해서 국민도 정부도 매우 둔감하였다. ‘태어날 때 다 제 밥 그릇 들고 나온다’는 게 국민일반의 인식이었고, 정부에서는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는 실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가족계획운동을 펼친 사람은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였다. 조지 워스(George C. Worth)라는 자신의 본명 대신 오천혜라는 한국 이름으로 선교활동을 했던 그는 농촌 전도에 나섰다가,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집집마다 예닐곱 명 이상씩 방치돼 있는 모습을 목도하고는 가족계획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사재를 털어 일간지 등에 광고를 내는 방식으로 자녀 적게 낳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의 활동에 영향을 받은 국내인사들이 모여서 가족계획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고….

1961년 4월에 대한가족계획협회(이사장 양재모 연세대 의대 교수)가 창립되었다. 물론 가족계획운동의 본래 취지는 단순히 산아제한만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불임부부에 대한 치료나 모자건강을 위한 공중보건운동… 등 설립취지문에는 다양한 항목이 망라됐으나 어쩔 수 없이 자녀 덜 갖기 운동을 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창립된 지 한 달 보름 만에 5.16쿠데타가 일어났고,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민간운동 단체였음에도 군사정권의 포고령에 따라 여타의 사회단체들과 함께 해체되고 말았다.

그런데 군사정부는, 가족계획운동이 자신들이 내건 ‘혁명공약’의 실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고, 오히려 국가시책으로 채택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때부터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족계획운동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이다.

가족계획 사업은 무엇보다 홍보가 중요했으므로, 표어와 포스터를 제작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는데, 초창기에 채택된 표어들을 보면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등이었다. 참고로 그땐 거지가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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