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8] 이론과 실제는 왜 다를까

  • 입력 2019.02.24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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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온다. 며칠째 동계 전지·전정 작업을 하느라 쉬지 못했는데 오늘은 봄비가 촉촉히 오는 날이니 공치는 날이다. 전지·전정 작업은 속도가 빠르질 못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가지를 잘라낼까 말까,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초보농사꾼이기 때문에 더 그렇지 싶다.

한해 과수 농사는 전지·전정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이미 만들어졌던 꽃눈과 잎눈이 본격적으로 움트기 전에 전지·전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이 오르기 전인 2월 이전까지는 마쳐야 한다. 설 전에 몇 그루 하다가 설 연휴가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4년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지치기는 어렵고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사과 전지·전정 이론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막상 실제로 나무를 대하면 망설여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210그루 사과나무의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무마다 가지들의 모양과 생김새는 물론 뻗은 방향이 제각각이고, 어떤 나무에는 꽃눈이나 결과지가 엄청 많은데 또 어떤 나무에는 조금밖에 없으며, 꽃눈의 크기가 한 나무 안에서는 물론 나무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고, 전체적으로 모양과 균형이 잘 잡힌 나무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나무도 있다.

같은 품종의 알프스 오토메 미니사과 나무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똑같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 나무의 뿌리모양이 각각 다르고 균일할 것 같은 토양도 아마 조금씩 다를 것 같고, 영양상태도 조금은 차이가 있고, 온갖 균과 벌레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힘도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무의 전지·전정 작업이 천편일률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의 상태를 살펴가며 작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무를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농부의 입장에선 각각의 나무들이 원하는 바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나무들은 제대로 생장하지 못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은 다양한 주체들의 행위를 평균적으로 설명하고 객관화 한 것이기 때문에 주체 전체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는 매우 유익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주체들의 개별적인 행위를 모두 다 설명하진 못 한다는 한계가 있다.

사과나무 전지·전정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은 연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로 이 작업을 해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교과서적 이론을 모든 나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론은 하나이지만 나무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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