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 헛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경상북도 칠곡군 소화자 할머니의 시 ‘시가 뭐고?’)
‘시골 할매’들이 시를 썼다. 평생 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의 한글 사용 금지정책 때문에, 해방 이후엔 ‘여자가 글 배워서 뭐하냐’는 봉건적 농촌 분위기 때문에 한글을 배울 수 없었다. 곧바로 가족을 도와 농사를 지어야 했다. 시집가고 나선 자식들을 낳고 가족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고향 땅을 떠나 객지에서 온갖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야 하기도 했다.
본인 이름 석 자 쓰는 것도 어려워했던 그 할머니들이, 어느새 시를 쓰고 시집(詩集)을 냈다. 경북 칠곡군 약목면 할머니들은 2015년 「시가 뭐고?」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위에 소개한 소화자 할머니의 시 제목에서 딴 이름이다. 칠곡군에서 시작한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문해교육을 받아온 할머니들이 쓴 시를 모은 책이다.
이 칠곡 할머니들의 이야기가「칠곡가시나들」이란 영화로 나온다.「트루맛쇼」,「MB의 추억」등 각종 정치·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어 온 김재환 감독이 지난 3년간 칠곡 할머니들과 만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시 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칠곡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문해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이 시를 썼다. 경상남도 통영시의 지역출판사인 ‘남해의봄날’에서 순천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시를 모아 지난 1일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시집을 냈다. 글 배우고 시 쓰는 일은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가난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할머니들이 평생토록 갈망해 온 일이었다. 할머니들은 문해학교를 다니면서 글을 배움과 함께,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도 찾았다.
‘공부를 하니 젊어졌다고 합니다. / 글을 읽어도 쏙 들어오고 숙제도 재밌습니다. / 문자 못한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합니다. / 성격도 활달하게 변하고 말도 잘하고 / 공부가 나를 달라지게 했습니다.’(전라남도 순천시 김명남 할머니의 시 ‘최고의 행복’)
할머니들은 시가 뭐냐고 묻는다. 농사만 짓고 살아서 농사는 알아도 시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 감정을 솔직하게 시로 표현했다. 문학이 삶 자체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란 정의가 맞다면, 할머니들은 그 어떤 시인들보다도 정확히 시를 알고 있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은 시의 바탕이 되는 ‘인생’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할머니들의 마음속에서 80년 넘게 숙성된 시. 긴 세월 동안 숙성된 구수한 시들이 할머니들의 글을 통해 세상에 나오고 있다. 글을 몰랐을 뿐 인생을 누구보다 잘 살아온 할머니들이, 이제 스스로 선택한 배움의 기쁨을 누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