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그림 함께 공부하며 기쁨도 자신감도 더 커져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 설 앞두고 그림일기책 출간
가족 격려에 용기 얻어 … “앞으로도 더 배웠으면”

  • 입력 2019.02.17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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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전남 순천시에서는 할머니들이 한글뿐 아니라 그림 공부도 병행하며 큰 기쁨을 맛보고 있다. 할머니들의 꿈은 어느새 전시회와 책 출간 그리고 해외에까지 뻗어가고 있다.

순천지역에선 순천시 평생학습관과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이 협력해 할머니 20명에게 한글과 그림 수업을 진행했다. 이 할머니들은 최근 잊지 못할 설 명절을 보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일 자신들의 글과 그림을 모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가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지난 3년 동안 할머니들이 지나온 삶의 얘기와 직접 그린 자화상, 그림일기 등이 담겨져 있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이번 설에 가족들에게 책 출간을 자랑할 수 있었다면서 “이런 설이면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장선자(75) 할머니는 “설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이 ‘처음엔 학교가는 걸 보고 뭐라했는데 대학원까지 간 너희도 못 해본 책도 냈다. 엄마가 대단하지 않냐. 격려도 하고 축하도 해라’고 칭찬을 하더라”면서 “평소엔 무뚝뚝하던 양반이 왜 저러나 싶었다”라며 흐뭇해했다. 그러면서 “매실 농사도 짓고 콩도 심고 하느라 바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등학교까지 가고 싶다”고 뜨거운 향학열을 보였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일엔 이 할머니들의 작품으로 구성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도 출간했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일엔 이 할머니들의 작품으로 구성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도 출간했다.

할머니들은 무엇보다 자녀의 응원이 큰 힘이 됐던 듯하다. 이들은 “아들이 전화를 하면 ‘어머니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어요’가 인사다. 학생인 손자도 내가 공부하다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주더라. 이렇게 소통을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다”고 기뻐했다. 김명남(71) 할머니는 “공부를 하겠다 말하니까 아들이 깜짝 놀라더라. 내가 공부를 안 한지 몰랐으니까. 아들이 공부하는 곳을 알려줘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범위가 커졌다”라며 “세상을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2017년부터 시작한 그림공부는 이 할머니들에겐 또다른 도전이었다. 다들 당시를 “처음에 그림을 그려보라는데 동그라미도 못 그렸다. 어떻게 그릴지 막막하더라”고 떠올렸다. 김영분(78) 할머니는 “집에 가서 컵잔과 병뚜껑을 엎어놓고 그걸 따라서 동그라미를 그렸다”라며 “그러다 닭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내 자화상도 그렸다. 요즘은 길가를 걷다보면 그리고 싶은 게 많아졌다”고 환하게 웃었다.

한글교실은 1주일에 세 번, 그림교실은 1주일에 한 번 열린다. 할머니들은 지칠만한 학습일정을 2~3년 동안 꾸준히 따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글을 배우니 용기가 생기더라. 알아가는 게 참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할머니는 “전에는 단체생활도 겁이 나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나 마음이 우울했다. 은행일을 보러가거나 병원에 예방접종을 하러 가도 글을 써야 하는데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었다”면서 “지금은 자신만만하다. 어떤 일이던 착착 할 수 있으니 제일 좋다”고 뿌듯해했다.

순천의 ‘소녀시대’라 불리는 이 할머니들은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전시회도 열고 각자 자신의 작품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책도 갖게 됐다. 오는 4월엔 미국에서도 전시회가 열릴 계획이다.

할머니들의 바람은 따로 있다. “더 배우고 싶다. 그래서 한글을 줄줄 읽고 편지를 척척 쓰는 게 제일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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