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아직도 머나먼 길

  • 입력 2019.02.03 19:49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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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촛불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정말 달라졌을까? 전 세계를 휩쓴 여성들의 ‘미투(Me Too)’ 운동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정말 달라졌을까? 나날이 언론을 장식하는 헤드라인 뉴스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또 다시 첩첩산중임을 알려주는 것 같아 답답하다.

지명은 쓰고 싶지 않다. 부끄럽다. 그런 군 의원과 그런 농협 임직원들을 뽑은 지역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이런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움을 넘어 무기력감을 느낀다.

외국까지 나간 연수에서 당당히 자신의 쾌락을 상대해 줄 여성을 찾고 그런 요구를 받아주지 못하는 가이드를 폭행하고, 국내 선진지 연수라는 이름으로는 여성들을 동승하여 접대하게 하고 술을 먹고 노래방만을 가는 희한한 연수를 하고 오고….

이 사건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공분만 하고 있을 수 없기에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은 그들 몇몇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들과의 싸움이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오래된 관행과 오래된 제도와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힘들게 싸우고 있다.

조합장을 비롯해서 임직원들의 기가 막힌 연수가 알려진 이후 우리는 농민단체와 시민단체 쪽에서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떤 농민단체에서 나오는 말이 이렇다. “이 일이 알려지면 예수금 떨어진다.”

무슨 개뿔, 예수금이 문제야? 욕이 나오고 악이 받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앞의 사건들이 조금 놀라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공식적인 술자리에도 옆에 술 따르는 여성들을 앉히고, 공식적인 경비를 쓰는 자리에도 접대비라는 이름으로 그런 비용이 당연히 결제되고, 부적절한 장소의 출입과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행동 역시 남자니까 그럴 수 있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이해심 높은 통 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알려진 처음에만 조금 놀라울 뿐일 수도 있겠다 싶다. 실은 나도 그런 이해심이 생기려고도 한다. ‘이것이 어디 이곳뿐이랴? 이것이 어디 한 번 뿐이랴?’

그러나 다시 마음을 먹는다. 안 된다. 이번 한 번 뿐이 아니어도, 이곳 한 곳 뿐이 아니어도 달려들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도 또 달려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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