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차⑤ “비 오는 날 밤, 청와대 가는 길을 조심하라”

  • 입력 2019.02.03 19:4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해방이 되자 해외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 서울로 돌아왔다. 북녘에서도 남녘에서도 해방된 수도를 구경하기 위해 너도나도 서울로 몰려들었다. 서울의 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전차만으로는 더 이상 서울의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여, 일제 말기에 운행을 중단했던 버스가 서울 거리에 다시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웠다.

1950년대 말 즈음에 이르자 버스를 비롯한 자동차의 대수가 급격히 늘어서, 그 동안 도로의 주인 노릇을 독차지 했던 전차는 그 자리를 자동차에게 내어주고는 얼자의 처지로 밀려났다. 아니, 오히려 이제 전차는 시내 교통을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신설동 정거장에 내리실 분 빨리빨리 내리세요!”

“이봐, 차장! 승객이 버스에 치여 죽든 말든 등 떠밀어서 내려놓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럼 어떡해요. 여기가 정거장이니까 일단 내려야지요.”

정거장에 전차가 설 때마다 차장과 승객 사이에 티격태격 말다툼이 벌어졌다. 사정이 어떻게 변했느냐 하면, 전차는 궤도를 따라서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고, 그 양옆으로는 버스나 트럭, 그리고 택시들이 내달리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전차가 정거장에 멈추면, 승객들은 자동차가 왕래하는 찻길 한가운데로 내려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선 할아버지의 얘기는 이러하다.

“정거장이라고 해봐야 거기에 육교도 없었고 횡단보도 표식 같은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전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길을 건너던 사람이 자동차에 치이는, 그런 인사사고가 빈발했지요. 그러니 전차가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요.”

전차 궤도가 오히려 시내교통의 방해요소로 전락하자, 정부에서는 노선버스를 증설하는 한편으로 전차노선을 하나 둘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전차 승무원들의 생계가 문제였다. 1960년대 중반 기준으로, 무려 2,800여 명에 이르는 전차 승무원들이 밥줄을 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바로 ‘시영버스’였다.

“어이, 김씨! 자네 오늘 오후에 신진자동차 학원에 가는 날 아니야?”

“저는 어제 다녀왔으니까, 내일 갑니다.”

“어때? 전차 운전하다가 버스 운전대 잡으려니까.”

“아이고, 전차가 몇 배 낫지요. 버스 운전 그거 힘들어서 못 배우겠던데요.”

당국에서는 전철 노선의 철거에 앞서서, 전차 승무원들을 교대로 신진자동차 학원에 보내서 자동차 운전을 배우게 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시영버스의 운전수로 채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렇게 해서도 인력을 모두 소화하기 어렵게 되자, 시에서 공영택시회사를 설립해서 택시 운전수로의 전업을 알선하기도 했다.

동대문에서 뚝섬과 광나루를 오가던 기동차는 적자운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내 전차보다 먼저 도태되었고, 시내 전차의 궤도는 6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독 남대문에서 효자동에 이르는 전찻길만은 1966년도에 일찌감치 폐쇄되었다. 거기 웃지 못 할 사연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6년 10월 어느 날의 한밤중, 남대문에서 효자동에 이르는 전찻길을 아스팔트로 포장하는 공사가 벼락치기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은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차가 다니던 길을 자동차 길로 바꾸려면 레일을 걷어내고 포장을 해야 할 터인데, 철로를 그대로 둔 채로 그 위에다 아스팔트를 부어서 찻길을 닦았던 것이다.

1966년 10월 31일에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의 행차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미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눈가림 식으로 공사를 서둘렀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묻혀있던 레일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비 오는 날 밤이면 청와대로 향하는 그 길에서, 자동차들이 귀신 들린 듯 마구 비틀거리며 부딪치곤 했다.

서울 전차는 1968년 11월 30일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