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땅 뺏길 위험에 노출된 농민들

광주-강진 고속도로 지날 전남 강진군 현산리
시세 대비 턱없이 낮은 지가 보상 … 선택권 없어
친환경 농민들, 직불금·투자 비용 모두 날릴 판

  • 입력 2019.02.03 18:00
  • 수정 2019.02.11 15:5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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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공익을 내세워 벌어지는 각종 토목사업 때문에 해마다 농민들이 애써 가꾼 땅을 내놓고 있다. 국익을 위해 주민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기엔 그 정도가 지나친 수준이다. 공익사업의 깃발이 꽂히는 순간 땅을 지킬 권리를 잃는데다, 그 재산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새로 개통되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강진을 잇는 고속도로 역시 턱없이 낮은 보상을 마주한 일부 주민들의 반발행동이 예상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용토지에 대한 보상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르면 국가가 토지를 취득할 때 지주에게 돌아가는 보상액은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대개 공시지가는 부동산 시장의 시세보다 턱 없이 낮고, 특히 농촌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문병숙 현산리 이장(56)은 “1평을 사가고 싶다면, 어디서 다시 1평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줘야 이치에 맞지 않느냐”라며 “우리도 국책사업을 무작정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납득 가능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마을 사람들이 마주한 1차 감정평가액은 부동산 거래 시세에 크게 못미쳤다. 지난 2018년 작천면에서 거래된 토지의 매매 계약서들을 살펴보면, 그해 3월 거래된 작천면 내기리의 논 약 3,000㎡의 거래가는 7,264만원이었다. ㎡당 약 2만4,000원선. 그러나 이번 공사로 인해 수용 예정인 논들의 평가액은 ㎡당 1만7,000원을 밑돈다.

마을 주민 백종선(75)씨는 “(정부에서는) 말은 원래 땅 주인이 갑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야”라며 “모든 우선권은 나라에 있고 우리는 전혀 힘이 없다”고 한탄했다.

수용한 만큼의 땅을 다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산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등 고속도로 건설 사업자는 해당 토지 구획 중 일부만 공사구간에 포함되는 경우 구획 전체를 매입하지 않는다. 가령 1,000평의 필지 가운데 500평이 공사 구간에 포함된다면 그만큼의 면적만 깎여나간 채 남는 것이다. 논의 경우 적정 규모 이하의 필지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는 매우 불합리한 조처라는 것이 농민들의 지적이다.

지방의회에 입성해 제6대 강진군의회 의장을 역임하고 마을에 돌아온 농민 김은식(61)씨의 땅도 수용 지역에 포함돼 있다. 김씨는 “필지 크게 만드려고 애쓰는 이유가 뭐겠는가. 그래야 농사짓기 좋으니 그러는 건데 이 좋은 땅이 다 망가진다니 답답하다”라며 “모양도 이상하게 바뀌면 어떻게 농사지으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공사 구획이 비스듬하게 지날 경우 떼어가고 남는 땅은 삼각형이나 사다리꼴로 변해 기계를 통한 작업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심지어 하우스나 육묘장 등 시설을 갖춰 영농하는 경우엔 시설을 일부만 철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농지로서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토지보상법은 현실성 없는 보상규정과 더불어 토지수용 이후 영농활동에 대한 배려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광주-강진 고속도로 건설로 땅을 내어주는 농민 백종선씨가 수용절차 이후 농사지어야 할 논의 형상.
토지보상법은 현실성 없는 보상규정과 더불어 토지수용 이후 영농활동에 대한 배려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광주-강진 고속도로 건설로 땅을 내어주는 농민 백종선씨가 수용절차 이후 농사지어야 할 논의 형상.

 

미흡한 영농보상 기준도 늘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공익사업으로 인해 수용되는 토지가 농지일 경우,「토지보상법 시행규칙」제48조(농업의 손실에 대한 보상)에 따라 직전 3년간 소득의 평균치를 구해 2년분을 농민에게 보상하게 돼 있다. 토지를 수용당한 농민이 농사지을 기반을 새로 마련하는 동안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법령은 현재 다양한 영농형태 전부를 감싸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규모의 농지에서 같은 작물을 키운다 할지라도 노지영농과 시설영농의 투자비용 차이는 매우 크다. 현재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시설물이나 농기계에 대한 보상규정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땅’에 대한 투자를 한 농민이 보상을 받을 권리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종목이 바로 친환경농업이다. 무농약을 넘어 친환경인증을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을 고려했을 때 친환경 영농을 하는 농가가 관행 농지와 똑같은 수준의 영농보상을 납득하기 어렵다. 약 5,000평의 논에서 친환경 쌀을 생산하고 있는 문 이장은 해당 면적을 대상으로 매년 수령하는 친환경보조금 약 1,836만원을 영농보상에 포함시켜 달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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