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으로 무너진 아로니아 … 책임져야 할 정부는 뒷짐

한-EU FTA로 분말수입 폭증
폭락 원인의 절반이 FTA인데
생과수입 없다고 직불금 배제

  • 입력 2019.02.03 18:00
  • 수정 2019.02.03 20:2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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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아로니아 몰락의 원인은 통계수치(아래)를 보면 일목요연하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17톤이었던 국내 아로니아 생산량은 매년 2,000톤가량씩 늘어나 2017년 8,779톤을 기록했다. 같은기간 아로니아 분말 수입량도 0톤에서 520톤으로 늘었는데, 분말을 생과로 환산해 보면 국내 생산과 똑같이 매년 2,000톤가량씩 늘어난 셈이다. 요컨대 아로니아 몰락 원인엔 국내 생산증가와 수입증가가 지분을 양분하고 있다.

물론 통계엔 농업경영체로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생산이 빠져 있어 실제 국내 생산량은 두 배 이상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말 수입량 또한 아로니아 가공품 전체 수입량의 겨우 50%에 불과할 뿐, 주스·농축액 등의 다양한 제품이 별도로 수입되고 있다. 통계의 허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입증가는 매우 중요한 폭락 요인이다.

국내 생산증가의 책임은 재배에 뛰어든 농가, 재배를 유도한 지자체, 이를 방관한 정부 등 여러 주체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입증가의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 수입 아로니아 가공품의 90%는 유럽산이며, 수입량이 급증하게 된 계기는 한-EU FTA였다.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FTA를 강행한 것이 바로 정부다.

다행히 정부가 FTA로 인한 농업 피해에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든 장치가 있다. FTA 직불제다. FTA로 ①관세가 인하된 품목 중 ②수입이 증가하고 ③국내가격이 하락한 품목엔 FTA 직불금 지급과 폐업지원이 검토된다.

그런데 아로니아의 경우 ①가공품 품목별로 8~50%였던 관세가 완전 철폐됐고 ②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③kg당 1만원대의 가격이 1,000원대까지 떨어졌음에도 직불금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생과가 아닌 가공품 수입이라 생과 가격과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아로니아는 FTA로 인한 수입증가와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공 형태로 수입된다는 이유로 FTA 직불제에서 배제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국 아로니아농가 300여명이 집결한 청와대 앞 집회에서 정수덕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장이 삭발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아로니아는 FTA로 인한 수입증가와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공 형태로 수입된다는 이유로 FTA 직불제에서 배제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국 아로니아농가 300여명이 집결한 청와대 앞 집회에서 정수덕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장이 삭발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아로니아 수입은 100% 가공품 형태로 이뤄진다. 애당초 생과는 검역상 수입이 금지돼 있지만 가능하다 하더라도 굳이 적재효율과 유통편의성이 떨어지는 생과를 들여올 이유가 없다. FTA 직불금을 받기 위해선 일단 생과가 수입돼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구조다.

하지만 가공품 수입으로 인한 피해는 분명하다. 아로니아는 특유의 떫은 맛 때문에 생과로 유통되더라도 소비자가 섭취하는 시점에 이르면 어떤 식으로든 가공의 형태가 돼 결국 수입 가공품과 경합하게 된다. 이같은 수입 가공품이 시장 포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량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비단 아로니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FTA 직불금은 그동안 많은 허점을 노출해 왔다. 오렌지·파인애플이 아무리 많이 수입된다 한들 대체재인 국산 감귤·사과에의 영향은 인정되지 않고, 김치 수입이 폭증해도 국산 배추와는 관련없는 일로 치부된다. 다만, 아로니아의 경우 지금까지의 그 어느 품목보다도 수입 피해가 크고 명확하다.

국내 생산이 급증한 이상 가격하락의 모든 책임을 수입으로 돌릴 수는 없다. 국내 생산증가에 대해선 농가와 지자체, 정부가 책임을 분담해 대책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초래한 수입증가에 대해선 정부가 외면하는 이상 책임소재를 찾을 길이 없다.

지난달 24일 농민들은 아로니아 FTA 직불금 발동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 집회를 거행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뒤인 25일 농식품부는 “아로니아 가격하락은 국내 생산 과잉 탓”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농민들은 이에 분개하며 장관 재면담 등 더욱 적극적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정부의 기계적인 FTA 직불금 운영이 그 최대 피해자인 아로니아를 만나 예사롭지 않은 잡음을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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