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7] 말과 글

  • 입력 2019.02.03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원<br>중앙대 명예교수

지난주 월요일에는 오랜만에 TV녹화를 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한국농업방송국(NBS)에 다녀왔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농업·농촌·농민 전문 TV 방송국으로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NBS초대석’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망설였으나 사회를 맡고 있는 양승룡 고려대 교수의 부탁도 있어 출연하기로 했다.

30여년의 교수생활에서 은퇴하고 안락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굳이 농촌에 내려가 농사짓는 이유, 농사의 어려움과 즐거움, 사과판매와 수익성, 이웃과 사는 얘기, 현장과 정책과의 괴리, 주요 농정에 대한 아쉬움과 대안 등에 대해 차분하게 대담하는 자리였다. 50여분 동안 사회자와 단둘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3년여의 귀농·귀촌생활을 짧게 정리하는 계기가 돼 개인적으로는 모처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현역시절 TV나 라디오에 전문가로서 나름 꽤 많이 출연해 본 경험이 있으나 은퇴 이후에는 기회가 가끔 있어도 정중히 사절하는 편이다. 10여 년 전에 쌀 수매제도를 폐지할 때와 한-미 FTA 협상할 때 2~3년간 생방송으로 토론하는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나가곤 했다.

당시 토론준비과정도 그렇고 의견이 첨예하게 다른 전문가나 정책당국자들과 생방송으로 토론한다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엄청난 긴장과 스트레스는 물론 생방송 TV토론의 경우 새벽 2~3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 오면 아쉬움과 후회로 거의 매번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새롭다.

9시뉴스는 물론 각종 라디오 프로와 전화 인터뷰도 많이 했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그렇게 많은 방송에 나갔던 것은 농민 입장에서 얘기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도 나가 농민들의 입장이나 주장을 국민들께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은퇴하고 귀농해 농촌에서 살고 있는 지금 방송출연은 버겁고 힘들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한 역할을 이젠 후학들 중에서 누군가가 해주기를 고대할 뿐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과거에 어쩔 수 없이 방송에 나가 이런저런 주장을 펴고 대안을 제시한다고는 했지만 크게 남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영상이나 소리로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내가 의도했던 생각이나 주장은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일 뿐 깊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여생엔 나의 생각과 주장, 또는 철학을 방송보다는 글로 남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싶다. 본지의 농사일기도 그만 쓰라할 때까지 쓰고 싶고, 앞으로 전공서적도 두세 권 더 쓰고 싶다. 말보다는 글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