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니아 농가의 눈물

  • 입력 2019.02.03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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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대통령님, 아로니아 농가를 살려주세요!” 한 여성농민이 울부짖는다. 확성기 마이크를 부여잡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치는 모습이 절박하다. 호소할 곳이라곤 이제 ‘대통령님’밖에 없다는 벼랑 끝 심정이 그녀를 단상 위로 불러 세웠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아로니아 생산자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최향숙(58)씨가 ‘FTA 피해보전 즉각 실시 및 폐업지원금 현실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대통령님, 아로니아 농가를 살려주세요!” 한 여성농민이 울부짖는다. 확성기 마이크를 부여잡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치는 모습이 절박하다. 호소할 곳이라곤 이제 ‘대통령님’밖에 없다는 벼랑 끝 심정이 그녀를 단상 위로 불러 세웠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아로니아 생산자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최향숙(58)씨가 ‘FTA 피해보전 즉각 실시 및 폐업지원금 현실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유학 간다는 자식을 농사짓자고 붙잡았어요. 소득작목이라고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육성한 게 아로니아잖아요. 하지만 수입산에 밀려 고사하고 있습니다. 가격 하락에 수확까지 방치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부모가 젊은 놈 신세를 망친 거에요. 대통령께서 나라다운 나라와 농업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의 아픔을 함께 느껴주세요.”

지난달 24일 한 여성농민의 울음 섞인 절규가 청와대 앞을 지나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충남 서천군 서면 춘장대 해수욕장 인근에서 4,500평의 아로니아 농사를 지어온 최향숙(58)씨다.

이날 청와대 앞에선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가 개최한 아로니아 생산자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FTA 피해보전 즉각 실시와 평당 2,000원이라는 폐업지원금의 현실화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원래 최씨는 이날 대회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 대회에 참석해 무대까지 오르게 된 것.

최씨는 지난 2010년부터 아로니아 농사를 지었다. 최씨의 동생이 당뇨가 있었던 그에게 아로니아가 건강에도 좋고 유망하다고 추천한 까닭이다. 당시만 해도 웰빙 바람 속에 ‘왕의 열매’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아로니아의 인기는 상당했다. 첫 식재엔 1그루에 3만5,000원이 들었고 두 번째엔 1만5,000원이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여기저기 없는 돈을 끌어다가 분무식 관수장비(스프링클러)까지 설치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호텔조리학과를 다니던 큰아들이 2015년 무렵 제대해 유학을 준비했다. 최씨는 아들에게 유학 대신 농사에 투자해보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라 유통이나 판매 감각도 나을 것이고, 조리를 전공한 터라 가공도 함께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씨의 아들은 함께 아로니아 농사를 짓기로 결정했다.

5년이 지난 2016년 본격적으로 열매가 맺히며 7톤 가량을 수확했다. 1kg 당 1만5,000원~2만원까지 받았지만 첫 수확이나 다름없어 수확량의 절반은 홍보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아들과 함께 가공한 아로니아즙과 잼, 고추장, 떡국 떡 등이 입소문을 타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호시절은 잠깐이었다. 아로니아 분말가루 등 수입산의 폭격 속에 가격폭락이 일상화된 탓이다.

결국 아로니아 얘기만 나오면 아들이 도망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가족이 나가서 돈을 벌면 800만원은 벌 텐데 거꾸로 빚만 지고 있다는 게 아들의 얘기다. 요즘 그의 아들은 먹고 살길을 찾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씨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이날 대회에선 아로니아 농사를 더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각양각색의 사연이 이어지며 눈물바람의 연속이었다. 살려달라는 아로니아 농가들의 절규가 대통령에 가 닿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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