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중심’에 농민·여성농민이 있기를

  • 입력 2019.01.27 18:00
  • 기자명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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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대통령 신년사를 보며

새해가 들고 열흘이 지나 올해도 어김없이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 모두에 신년사가 있었다.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대통령과 농업계의 만남에 실망스러웠던 필자는 대통령의 신년사를 기대하고 챙겨봤다.

일단 눈에 띈 것은 국민을 수십 번, 각 분야 이해당사자를 모두 언급하면서도 농업을 언급하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농업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이 달랐다.

신년사의 주요 핵심은 ‘사람중심 경제’와 ‘혁신적 포용국가’라 할 수 있겠다. 함께 잘사는 경제,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경제를 기반으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으로 국민은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것을 ‘포용국가’로 정부가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년사에서는 ‘다섯째, 소상공인과 자영업, 농업이 국민 경제의 근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작년 수확기 산지 쌀값이 80kg 한 가마당 19만3,000원으로 여러 해 만에 크게 올랐습니다. 농가소득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올해는 공익형 직불제 개편 추진에 역점을 두고 스마트 농정도 농민 중심으로 시행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안전문제와 관련한 부분에서도 ‘가축 전염병에서도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 농업이 같이 언급되긴 했으나 국민 경제의 근간임을 분명히 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여러 해 만에 이제야 제자리 찾아가는 중인 쌀값 오른 얘기를 신년사에서 꼭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문재인정부 중반부의 늦은 출발이긴 하나 그러기에 오히려 발족을 앞두고 있는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를 언급해 좀 더 힘을 실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농민이 존중받는, 사람 중심의 직불제로 개편

어쨌든 사람이 없고 성장만 있던 경제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그 국민 속에 농민도 포함돼 있다. 아니 반드시 농민이 포함돼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지난시기 문재인정부에서 농민은 등외국민, 투명인간 취급돼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정부의 사람 중심의 경제에 농민이 포함되기를 국민 경제의 근간이라는 농업이 포함될 거라 믿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모든 농산물이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농민에게 공정경제가 가능한가? 농지의 절반이상을 비농민이 소유하고 있는데 농업의 혁신성장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그런가, 너무 늦어 이젠 기대를 놓아서일까 현장 농민들의 반응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런 정도의 내용으로는 기존에 겪어왔던 바로 볼 때 농업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반응으로 보인다. 이제 농민들은 획기적인 대책이 있지 않으면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어렵다고 본다.

언급된 공익형 직불제 개편 추진과 관련해서도 기존에 있는 직불금을 통폐합해서 다시 갈라줘서는 도시가구의 63% 수준으로 떨어진 농가소득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한다.

생산과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예산확보와 공정성이 담보되는 사람 중심의 직불제로 개편되길 바란다. 여성이라고 배제되지 않고, 청년이라고 간섭받지 않고 존중받는, 당연하나 받지 못한 그런 포용을 바란다.

어쨌거나 수십 년간의 개방농정이라는 거대한 경쟁의 흐름에서 허리띠 졸라가며 살아남은 농민들이 문재인정부에서 혁신적 포용국가의 일원으로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는 행복을 누릴 권리를 전체 국민들과 함께 누릴 수 있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언급된 ‘사람 중심의 경제’에 농민과 여성농민이 모두 포함돼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 15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의 한 들녘에서 김모(83) 할머니가 냉이를 캐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언급된 ‘사람 중심의 경제’에 농민과 여성농민이 모두 포함돼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 15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의 한 들녘에서 김모(83) 할머니가 냉이를 캐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림축산식품부 새해 계획을 보며

문재인정부의 농정기조를 반영하여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 올해의 업무계획에서 ‘문재인정부가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농정개혁’ 본격화를 내세우며 첫째, 농업에서는 경제적 가치 중심 → 공익적 가치로 확장하며 둘째, 농업인은 농산물 공급자 → 좋은 식품을 만들고 환경을 지키는 주체로 셋째, 정책은 농업인프라, 쌀 중심 → 청년·혁신농 등 사람 중심 농업 육성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마을공동체 활력유지, 국민이 안심하고 소비하는 생산체계 구축을 실현하기 위해 6개 중점추진과제를 중심으로 국민체감 성과 창출’을 내세우고 있다. 1)청년 일자리 창출, 2)스마트 농업 육성으로 농식품 산업 혁신성장 견인, 3)직불제 개편, 4)신재생에너지 확대로 농촌소득 증대에 기여, 5)로컬푸드 활성화, 6)농축산물 안전관리 강화로 안심 소비체계 구축으로 얘기하고 있다.

대체로 문재인정부 2기 농정체제라 할 수 있는 이개호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농정방향의 연장선에서 짜여진 업무계획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지난 시기 농정의 내용과 그간 형성돼 온 담론을 다시 한 번 다듬어서 내놓고 있다.

이제 와서 농정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아도 2기라 할 수 있는 농정의 기본지향이나 기본정책 방향, 구현체계 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서로 상충하는 내용들이 같이 나열돼 있기도 하고 퇴보한 내용들도 있다.

농정패러다임 전환, 농민들과 함께 해야

농업에서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로의 확장은 늦었지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먹거리 소비의 트렌드도, 농민들도 땅에서 농사지어 농산물을 생산해 공급하길 원하는데 정부는 혁신성장이란 이름하에 농장의 공장화만을 추구하고 있다.

농산물 공급자는 공익적 가치도 없고, 좋은 식품을 생산하지도, 환경을 지키는 주체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좋은 농식품산업 일자리 창출만을 쫓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식량을 생산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공익적 가치이고 농민이 갖는 제일의 자긍심이다.

좋은 식품과 국민이 안심하고 소비하는 생산체계는 농민들과 여타 국민들이 연대하며 신뢰를 쌓아야 만들어지는데 농민들만 안전관리 강화로 볶이고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불신만 깊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정책 방향과 목표가 분명치 않은 업무 집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혼란스럽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지난 여러 정부들이 농업을 국민 경제의 근간이라 말하면서 농업·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국민 경제의 기초를 놓아왔다. 농업이라는 국민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누누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왔듯이 이제라도 농정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단기적인 성과 창출에 연연하지 말자.

교육과 농사는 백년대계라 했다. 시급한 문제는 직불제 강화 등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대처하고, 식량주권 실현을 목표로 농가소득이 보장되는 지속가능한 통일농업을 방향으로 농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농민들과 함께 근본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지혜와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밥상이 힘이다’라는 제목으로 농업인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밥상이 힘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성평등 없는 법제도, 여성농민 권리·지위 하락 가져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의 마음은 어느 해보다 더욱 착잡하고 불안하다. 농가경제는 바닥인데 직불금조차 부재지주들에게 가로채이고 못 받는 농민들이 많이 있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해도 농가도우미를 신청하고 지원받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있는 것도 못 찾아먹는다 할지 몰라도 눈 밝은 사람 아니고는 정보 접근도 별로 없기 일쑤고 많이 간소화 됐다하나 바쁜 농사일 와중에 기한 내 서류를 갖춰 신청하는 것도 일이다. 때론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쥐꼬리만 한 혜택이 못마땅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농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만들어지고 시행된다지만 그런 제도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알고 찾아가도 기한이 지나거나 인원제한이 있어 수혜대상이 되기가 쉽지 않다. 제도가 만들어졌어도 성평등 의식의 부재로 여성농민들이 오랜 기간 투쟁해서 어렵게 쟁취한 성과가 일거에 무력화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농민수당의 농가당 지급 조례제정이다. 여성농민들은 농가경영체 제도가 만들어지자 공동경영주제 시행을 요구해왔고 관철시켰다. 그러나 공동경영주로 등록해도 농가당이라는 관행으로 만들어져 이미 시행되는 각종 직불금 수급이나 정부정책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에 여러 지자체에서 새로 도입, 시행하는 농민수당마저 관행적으로 농가당 지급 형태가 되면서 여성농민은 농민수당 수급에서조차 배제되고 공동경영주제도 시행의 의미가 무력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협의 복수조합원제도가 도입된 후 여성농민들에게 조합원과 이·감사 등 조합임원 참여의 길이 열렸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합들이 출자금과 이용고 등에서 문턱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농협 참여가 제한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여성들이 더욱 큰 역할을 하는 친환경농업에 인증제도가 시행된 후로 여성농민들은 친환경농업 생산자로서 단체 활동이나 조합 활동 참여 등 사회적 참여에서 소외되며 실질적인 지위가 하락했다.

농민수당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나 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주도하는 남성농민들 모두 일단 농민수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바로 잡으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여성농민에게 대단히 폭력적인 상황이고 농업·농민의 어려움을 이유로, 성인지 관점의 부재로, 행정편의로 반복되고 있는 잘못된 관행이기도 하다.

‘사람중심 농정개혁’ 중심에 여성농민 놓아야

이런 관행들이 여성농민들의 영농의욕을 떨어뜨리고 농촌에서 견디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이것은 농민의 단결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전체 농민의 몫을 줄여 농민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농가인구 중 여성이 51.1%(123만8,000명, 2017년 통계청), 농업 주종사자 중 여성이 51.1%를 차지하는 등 농업과 농촌의 핵심 주체로서 여성농민의 역할과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과 자원도 없고 농작업 환경은 맞지 않고 그래서 더욱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대가는 주어지지 않고 역할만 과다한데 겨우 쟁취한 작은 권리마저 다시 빼앗기는 것이 오늘날 여성농민의 현실이다.

과연 여성농민이 없는 우리 농업이, 농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농업생산의 주체이고 농촌공동체와 농촌사회 유지를 위한 무보수 봉사자로 헌신해 온 이들이 여성농민임을 누구나 안다.

농업·농촌의 핵심주체이고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사람,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사람중심 농정개혁’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개혁이 나올 것이다.

왜냐면 가장 취약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고 잘 살 수 있게 되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 농업과 농촌사회가 이뤄질 것이니까.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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