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도 생산의 주체 … 존재 가치를 인정하라”

[신년 간담회] ‘농가 단위’ 농업정책에 소외된 여성농민

  • 입력 2019.01.2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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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부장적이고 여성인권이 취약한 곳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더디나마 여권신장과 양성평등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적어도 여성농민들은 그들의 삶 전반에서부터 농민운동 활동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변함없는 제약과 차별에 직면해 있다. 역대 정부 중 가장 여성친화적이라 자신하는 문재인정부의 정책 또한 이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한국농정> 필진 신년좌담 연재기획 그 두 번째는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농정춘추」,「농민칼럼」등 본지 칼럼을 맡고 있는 여성농민들이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출범 3년차를 맞은 문재인정부를 평가했다.
기록 권순창·박경철 기자
정리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연재순서
1. 문재인정부 출범 3년, 농업인식 이대로 좋은가
2. 문재인정부 출범 3년, 여성농민 정책과제와 전망
3. 문재인정부 출범 3년, 2019년 농정과제와 전망


참석자
구점숙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경남 남해(사회)
이춘선 「농정춘추」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한영미
「농민칼럼」강원 횡성
강정남 「농민칼럼」전남 나주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문재인정부 출범 3년, 여성농민 정책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필진 간담회에서 패널들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영미 농민칼럼 필자, 구점숙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필자, 이춘선 농정춘추 필자, 강정남 농민칼럼 필자.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문재인정부 출범 3년, 여성농민 정책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필진 간담회에서 패널들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영미 농민칼럼 필자, 구점숙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필자, 이춘선 농정춘추 필자, 강정남 농민칼럼 필자.


 

구점숙경남 남해(사회)
구점숙경남 남해(사회)

구점숙: <한국농정> 여성농민 필진들은 실제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견해도 밝은 분들이다. 이들이 모여 좌담을 하면 여성농민정책이나 현장 여성농민 문제를 이야기하는 귀한 자리가 되겠다 싶어 내가 오늘 자리를 제안했다. 우선은 문재인정부 농정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이춘선: 정부가 부처별 위원회를 많이 소집하며 소통은 하려고 하지만, 농업현장의 의견이 잘 반영되진 않는다. 스마트팜밸리와 밥쌀수입, 계란난각표시 등에서 보듯 문재인정부 농정은 농민과 소비자 입장을 절충기보다 소비자 중심으로만 치우쳐 있다.

강정남: 대통령 공약 어디에도 농업·농민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농업에 비중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농민은 존재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문재인정부는 농업을 산업으로만 보려 한다. 농업을 산업으로 보는 순간 정책은 변형괴물이 된다.

한영미: 그동안 문재인정부 하에 농정은 ‘없다’는 얘기를 해왔고 그래서 정말 평가할 것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농민단체)를 평가해봐야 한다. 스마트팜밸리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지역에선 문제의식은 있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우리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주도적인 모습들이 안보이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 정부를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잘하는 건 뭐고 잘못하는 건 뭘까, 이런 데 대한 고민이 많다.

구점숙: 공감한다. 농정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할 만한 게 없긴 하지만, 우리 농민운동 진영에서 전체의 목소리를 모은 구체적 목표 요구가 부족했던 것 같다. 시사점이 있다. 그렇지만 출범 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정부에 얘기해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본격적으로 여성농민 정책에 대해 얘기해 보자.


정책의 사각지대, 농촌 여성

이춘선: 문재인정부 들어 성평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이것이 농촌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여성농민 전담부서 문제도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라 여성농민단체가 계속 요구해 이제야 좀 얘기된 부분이 있다.

강정남: 여성농민들의 요구로 중앙과 지역에 여성농민 전담부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농정은 지역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핵심고리는 역시 중앙정부다. 지역에 그걸 떠넘길 수는 없다. 지자체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받아들이지만, 중앙의 방치 속에 예산의 한계를 많이 느낀다. 이건 농민수당이나 직불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춘선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정책위원장
이춘선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정책위원장

이춘선: 농가공동경영주 등록의 경우 지난해 6월부터 남편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그런데 최근에 드러난 문제가, 당연히 여성농민이 경영주로 통계에 잡힐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동경영주가 아닌 그냥 농업경영종사자로 올려져 있다.

구점숙: 공동경영주 등록을 왜 해야 하는지 아직 이해가 미흡하다. 경영주 등록은 정부정책의 대상자가 된다는 의미인데 개별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전무하다. 여성농민이 일반적 농업정책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게 공동경영주 등록이었는데, 공동경영주로 등록했을 때의 혜택이 안보이니 의미가 없고 ‘안 해도 그만’ 식이 된다. 정부는 정책성과를 내겠다고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할 수밖에 없다.

한영미: 강원도의 사례를 같이 얘기했으면 좋겠다. 강원도 행복바우처는 처음에 65세 미만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지급했다가 농민들의 지속적 요구로 75세 미만까지 확대됐다. 수혜의 범위를 우리 스스로 늘려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업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규정을 명확하게 해 놓으면 이후의 논란을 줄여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춘선: 그래서 전담부서가 설치되면 정책들을 중앙으로 옮겨야 할 거라 본다. 지역마다 각각인 바우처의 금액·대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모든 정책이 농가 단위로 돼 있는 상황에서 바우처가 그나마 여성농민들에게 준 정책인데, 공동경영주 등록이 제대로 되려면 이처럼 여성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지역과 중앙이 함께 발굴·주도해야 한다. 여성농민을 전담하는 연구기관, 연구체계도 필요하다.


여성 희생 위에 선 농민수당

구점숙: 농민수당에 대해선 여성농민들이 특히 할 말이 많다. 농민수당이 지역마다 우후죽순 진행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여성농민이 배제돼) ‘농민수당’이란 이름에 걸맞게 진행되는 곳이 하나도 없다.

 

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 과거부터 여러 농민운동을 해왔지만 기본소득은 여성농민에게 의미가 컸다. 농민 누구에게나 소득이 주어지는, 이게 정답이다. 사실 농민수당이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설계됐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 농가수당·공익형직불제까지 나오면서 복잡하게 풀어가는지, 거기까지 가니 지역에서 관심들이 시들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농민수당이든 농가수당이든 일단 시작부터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개선해갈 점들이 보일 것이다.

강정남: 농민수당이면 농민수당답게 해야 하는데 농민수당이 아니면서 농민수당이라 한다. 지자체들이 기본소득을 추진하며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데 거기에 오히려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다. 농민단체 내부에서 그걸 제대로 합의하고 조율해야 하는데 의외로 잘 안되고 또다시 여성의 희생으로 묻혀진다. 이미 농가단위 시행으로 플랜이 다 짜여졌다. 몇몇 지자체에서 향후 여성농민까지 확대 ‘하겠다’ 라고 써놓긴 하는데, 우리가 그걸 믿고 ‘네 고맙습니다’ 해야 할 문제인가?

이춘선: 농민수당이 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성과주의·조급성과 어우러져 농가수당으로 가버렸다. 전농 등 다른 농민단체와 논의하다 보면 얘기가 안 통하는 부분도 있고, 우리가 마치 발목잡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이걸 보면 진보단체인 전농이 여성문제에 대해선 오히려 일반단체보다 못한, 성평등의식이 하나도 없는 단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농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마땅히 모두가 대상이 돼야 하는데 왜 우리가 문제제기를 한다고 해서 걸림돌이 돼야 하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구점숙: 농민수당은 수당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 인정의 의미가 크다. 단 몇 만원으로라도 농민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거다. 그러니 쉬운 문제다. 예전에 거창 농민수당 토론회에서 ‘당신들 나이든 어머님들 쪼그려앉아 일하느라 허리 굽은 걸 보고 연민을 느낀다면 사기다. 그걸 사회적으로 보상해줄 길을 다 집어치워 놓고 왜 그들의 노동에 기반한 식량자급에 대해 안타까워하나’라는 발언이 큰 호응을 얻었다.


여성농민의 자긍심을 돌려주자

 

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 중앙정부 정책이 하나도 없다. 결론은 그거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들이 중앙정부에 여성농민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들을 농농 갈등, 여농과 남농의 갈등, 지역간 갈등으로 우리가 떠안게 된다.

이춘선: 농업에도 성평등 농업정책이 실현돼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못 되고 있다. 농가 중심으로 돼있는 농업정책이 농민 중심, 사람 중심으로 바뀌려면 농업에 있어서도 성인지 관점이 곳곳에 실현돼야만 바뀌지 않을까 한다.

한영미: 횡성은 농활 때 성평등교육을 하는 것도 어려운 지역이었는데 최근 여성친화도시라고 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여성농민들이 노력해서 어렵게 어렵게 성평등교육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구나 골고루 혜택받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농민수당과 다른 정책에도 다 적용돼야 한다.

구점숙: 시금치를 캐 오는 길에 이웃이 ‘니도 참 불쌍타, 왜 이런 고생을 하나’라고 하더라. 농사일 하는 게 힘들지만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인데, 그 분은 여성농민으로서 아무런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농사일이 농업을 지탱하는 당당한 노동임에도 왜 이렇게 고생과 헌신으로만 비쳐지는지, 누군가가 답을 해야지 않을까 싶다. 농민수당이라든지, 여성농민바우처라든지, 다른 성평등농업정책이라든지, 이 분들의 자긍심을 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여성농민 문제의 핵심은 여성농민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시작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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