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무료한 마을회관에 활력을

  • 입력 2019.01.20 18:00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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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복대2리 마을회관에서 ‘꿍짝꿍짝’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벌써 시작을 했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사님과 참석자들이 활짝 핀 얼굴로 주고받는 노랫말에 힘이 납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김장을 담그고 나면 마을회관에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모이셨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 아침드라마를 다 보시고 점심을 준비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몇 분은 쪽잠을 주무시기도 하지만 대여섯 분이 모여 방구석에 있는 닳고 닳은 담요를 방 가운데로 옮기고 화투를 잡으십니다.

혹시나 했던 시작은 역시나로 진행되는지 말투가 험해지고 남 탓을 합니다. 몇 시간동안 몇 번의 판을 돌렸는지 모르나 10원짜리 주고받는 판이라도 지면 화가 나나 봅니다. 정리하는 돈은 100원이 될까 말까인데 마지막은 큰 소리로 끝나는 화투밖에 할 것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봄부터 열심히 농사지은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잘 쉬어서 다음 봄에 농사지을 힘을 키워야 하는데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이 10원짜리 동전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나 교통편이 마땅하지 않아 읍내나 면소재지의 교육기관에 가시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 할 일이 별로 없어 무료함으로 채워진 마을회관에 활력을 주고 싶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시간을 나눠 책을 읽어드렸고 색칠하기, 거울 만들기 등의 미술활동을 했습니다. 김밥과 베트남 쌈 만들기 등 요리활동도 했습니다. 체조선생님들을 모시고 신명나는 노래에 맞춰 스트레칭부터 율동까지 이어지는 건강 체조를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릴 때부터 들어왔을 내용인데도 책의 그림을 뚫어지게 보시며 읽는 사람의 말소리에 집중했습니다. 크레파스 상자를 보시고 피아노라고 이야기하시며 하얀 도화지에 칠해지는 예쁜 색에 환호하셨습니다. 색지로 딱지를 접어 모서리를 꾸민 거울을 보시면서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아이들 학교 소풍갈 때 싸보고 40~50년 만에 싸본다며 떨리는 손으로 당근과 시금치를 잡으셨습니다. 김밥에 김을 빠트리고 밥에 속 재료를 넣고 김밥을 말았는데 김발에 밥이 가득 묻어 떨어지지 않는 바람에 모두들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꿍짝꿍짝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다보니 안 올라가던 팔이 머리 위까지 올라간다며 고맙다하셨습니다. 지난 연말 발표회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자신 있게 건강 체조를 하셨는데 덕분에 무대라는 곳에 처음 서 보셨다고, 그 때 찍은 사진을 자식들에게 두고두고 자랑한다며 올 연말에는 어느 마을이 발표하냐고 물으십니다.

점심 먹고 남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었는데 가서 나눠 먹으라며 봉지를 챙겨주십니다. 이른 봄 냉이를 캐셨다며 맛있게 먹으라 하셨다고 강사님이 꼭꼭 눌러 담은 냉이봉지를 전하고 가기도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회관으로 찾아오는 교육을 우리밖에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른 기관에서도 마을순회 교육을 오는 것 같습니다. 시간과 재정 등의 이유로 각 마을에 일주일에 한 번 밖에 가지 못했는데 이런저런 교육으로 어르신들이 웃고 떠들며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 마을 곳곳에 건강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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