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차③ 1940년대, ‘서울 전차’ 한 번 타보실래요?

  • 입력 2019.01.2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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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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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중학생 이성선이 서울 방산동의 집을 나선다. 이윽고 을지로4가의 전차 정거장에 이르렀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돈암동의 경동중학이다. 이성선이 서 있는 전차 정거장의 좌우로는 부단히 우마차가 지나다닌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서울 시내에 버스도 다녔으나, 전쟁이 터지자 일제가 기름부족을 이유로 운행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화물은 우마차로 운반되었다.

그러니까 길 가운데로는 근대 문명의 발명품인 전차가 다니고, 그 양쪽 옆으로는 중세 시대의 교통수단이라 할 우마차가 지나다니는 묘한 부조화…그것이 일제 말 서울시내의 거리 풍경이었다. 우마차의 경우, 소나 말이 길바닥에다 배설을 하면 벌금을 물었기 때문에, 아기들에게 기저귀를 채우듯 인분 받는 주머니를 마소의 샅에다 채워서 끌고 다녔다.

드디어 전차가 도착한다. 여자 차장이 바빠진다.

“을지로4가 내리세요. 돈암동 방면 가실 분들 차비 준비하고 올라타세요!”

일반인들은 현금을 차비로 내고 학생들은, 흡사 70~80년대의 버스 회수권처럼 생긴, 미리 구입한 할인 차표 한 장을 찢어서 차장에게 건네고 전차에 오른다. 이성선 할아버지는 청소년기에 타고 다녔던 전차의 차비를 훤히 꿰고 있었다.

“운임은 행선지의 거리에 상관없이 한 번 탔다가 내리는 것을 1회 승차로 간주해서 동일한 요금을 받았는데, 광복 직전에는 50전이던 것이 1946년엔 1원, 다음해 6월에는 2원을 받다가 1948년에 5원으로 인상되었지요. 학생들의 경우 할인된 전차표를 학교에서 구입했어요.”

이성선 학생이 탄 전차가 몇 군데의 정거장을 거쳐서 종점인 돈암동에 닿게 되는데, 차가 종점에 도착해서 승객이 다 내리고 나면, 승무원들은 오히려 그 때부터 더욱 바빠진다.

전차의 승무원은 세 명이다. 맨 앞쪽과 뒤쪽 두 군데에 운전석이 있는데, 앞쪽에서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은 운전수고, 뒤쪽의 운전석에 앉아 가는 사람은 조수다. 차비나 차표를 받는 역할은 여자 차장이 맡는다. 그런데, 전차가 종점에 도착하면 가장 바빠지는 사람이 바로 조수다. 운전수가 소리친다.

“이봐 조수, 빨리빨리 트롤리 돌려!”

전차의 지붕 위에 달려 있어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쇠막대를 트롤리 폴(trolley pole)이라 하고, 그 트롤리 폴 끝에 달린 작은 쇠바퀴를 ‘트롤리’라고 한다. 전깃줄이 그 쇠바퀴의 홈에 물려서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전차와 전깃줄을 이어주는 쇠막대는 뒤쪽으로 45도 가량 기운 채로 전진을 하게 되는데, 종점으로 들어올 때는 꽁무니였던 부분이, 출발할 때는 앞쪽이 되기 때문에, 그 쇠막대를 뒤쪽에서 앞쪽으로 끌어다 옮겨서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조수가 신속하게 해야 한다.

뒤쪽에 있던 트롤리를 앞쪽으로 힘겹게 돌려 옮기는 작업은, 짧은 노선을 운행하는 소형전차의 경우에만 필요한 작업이었고, 긴 노선에 투입됐던 큰 전차는 앞뒤에 트롤리가 각각 설치돼 있어서, 종점에서 조수가 애써 반대쪽 지붕 위로 끌어다 돌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차가 종점에 도착하면 트롤리를 옮겨서 방향을 바꾸는 작업 말고도 조수가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행선지의 표시를 바꿔 다는 일이다.

“종점에 도착했으면 이제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니까 행선지 표시를 바꿔야 할 것 아녜요. 플래카드 같은 천에다가 미리 한자로 ‘청량리’ ‘서대문’ ‘용산’… 이렇게 행선지의 정거장 이름을 죽 써서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아둔 게 있어요. 그것을 전차의 앞 이마빡에다 끼웠다가, 정거장에 도착할 때마다 한 번 씩 돌리면 다음 역 이름이 나타나고….”

그런 식이었다. 아, 참, 전차의 차표 중엔 환승표(권)도 있었다. 정거장이라 해봐야 그냥 길바닥일 뿐, 무슨 개찰구 따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노선으로 바꿔 타려면 전차 안에서 미리 차장에게 돈을 더 내고 환승차표를 받은 다음, 바꿔 탈 지점에 일단 내렸다가, 다른 전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올라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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