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련한 농민

  • 입력 2019.01.20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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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촌 현장서 만난 농민은 스스로를 미련하다 자평했다. 반복된 가격 하락에 불어나는 건 빚뿐이건만 내년엔 다를 거란 그 기대 하나로 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다면서. 그 앞에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안타까움에 바닥만 쳐다보고 말았다.

지난 주 전남 무안에서 만난 농민은 양파를 재배 중이었다. 양파는 가격폭락이 심한 작목 중 하나다. 농민은 지난해 수확한 양파가 아직도 저장고에 쌓여있고 농자재 값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0월 말경 또다시 양파를 심었고 잡초를 뽑기 여념이 없다고 했다. 다리를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농민은 하루가 멀게 자라나는 잡초가 양파를 훌쩍 넘어 자랄 정도라 일을 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런 자신을 미련하다 꾸짖었다.

농민은 지난 2017년 보험에 가입했다. 수확량 감소는 물론 가격 하락까지 보장해주는 수입보장보험. 2017년 농민은 보험료로 100만원 정도를 납부했고 가격하락 및 수확량 감소 등으로 인한 보험금 약 1,000만원을 지난해 지급받았다. 농민은 인건비 등 작물을 수확하기까지 소요되는 비용을 대략 2,000만원으로 추정했는데, 결국 가입비용을 제하고 받은 900만원은 생산비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보험 가입이 선착순으로 한정돼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선착순 보험 가입. 말도 안 되는 작금의 사태는 이전에 지급된 보험금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농작물재해보험과 농업수입보장보험은 국가가 운영하는 정책보험이다. 하지만 지급된 보험금이 너무 많아서 즉, 손해가 뻔해 보험 가입을 제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 농촌의 현실은 농사짓는 농민이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 자신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느낄 정도로 열악하다. 농민은 가격이 폭락해 빚을 져도 내년 농사를 준비한다. 또 몇 안 되지만 가격이 좋을 때면 이전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단 희망에 또 씨를 뿌린다. 정부가 보험사의 손해를 걱정하며 가입을 제한할 게 아니라 농민이 안전한 농산물을 지속 공급할 수 있도록 보다 확실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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