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3] 두 명의 의병장
[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3] 두 명의 의병장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9.01.13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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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톺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제3회> 

최용탁 소설가

을미년 민비의 죽음에 대해서 도성 백성들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언들이 있다. 왕비를 죽인 일본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못된 짓을 일삼았던 그녀의 죽음 자체는 반겼다는 것이다. 분노가 폭발하여 의병이 일어난 계기는 단발령이 더 컸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보다는 상투를 자르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으므로 단발령이라는 용어가 꼭 적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투를 틀려면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을 밀어야 했기 때문에 일체의 터럭을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부터 있을 수 없었다.

각설하고, 근대사 속에서 을미의병은 그다지 중요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 주역들이 조선 유림 중에도 가장 보수적인 화서학파들이었고 그들이 소중화와 위정척사를 주창했기에 시대에 뒤떨어진 세력으로 치부된 탓이다. 그런 점을 고스란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을미의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많다. 근대사 속 가장 안타까운 장면인 김백선의 처형이 우선 그렇다.

기실 최초의 의병이라고 할 을미의병이 제천에서 거병할 당시의 논의를 보면 의구심 하나가 일어난다. 유인석을 중심으로 한 주역들은 확고한 명분으로 지금 보아도 마음을 격동시키는 격문을 팔도에 띄우면서도 정작 화력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의병들이 든 무기라는 게 대개 창칼과 몽둥이 수준이었다. 이미 갑오년에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본 이들이 준비한 무장 수준이 그러했다. 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준 게 지평의 김백선이었다. 용문산 자락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출몰하여 대규모의 포수부대가 있었고 이들을 관에서 관리하였다. 포수부대를 이끌던 김백선이 의병에 호응하여 400여 명의 포수들을 이끌고 원주를 거쳐 제천으로 와서 유인석부대와 합류한 것이었다. 총기로 무장한 명사수들인 김백선 부대는 선봉대이자 을미의병이 가진 화력의 중심이었다.

날카로운 기세로 청풍과 제천을 휩쓸며 현감의 목을 벤 의병들은 김백선 부대를 앞세워 충청도의 중심인 충주로 진격한다. 당시 전국 5대 도시 안에 들었던 충주에는 충청감영이 있었고 관찰사 김규식은 단발령을 적극 옹호하며 강제한 인물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충주성을 함락한 의병들은 김규식의 목을 베었다. 유인석은 철저한 근왕주의자이면서도 왕이 임명한 관리의 목을 벰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비극은 충주성 전투 직후에 일어났다. 여세를 몰아 일본군 진영을 공격하던 김백선부대가 강력한 적들의 저항에 위태로워질 때 호응을 약속했던 안승우부대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일군에 패배하여 진영으로 돌아간 김백선이 이에 항의하자 유인석은 놀랍게도 군율을 어긴 안승우가 아닌 선봉장 김백선을 처형한다. 평민 주제에 양반에게 대들었다는 게 이유였으니,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경기도 양평의 김배선 장군 묘소.
경기도 양평의 김백선 장군 묘소.
유인석 의병장 초상.
유인석 의병장 초상.

 

 

 

 

 

 

 

 

 

 

 

김백선의 처형으로 선봉부대는 흩어졌고 을미의병은 패배를 거듭하며 소멸해갔다. 애초에 동학농민들이 의병에 참여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가 하면 의병 내에서 엄격히 반상을 구별했던 한계가 불러온 결과였다. 다만 유인석은 이미 노년에 이르렀음에도 식솔을 거느리고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팔도의병 총대장이 되어 국내외를 오가며 근대 최초의 의병장으로서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후 진술한 내용 중에는 근대사 최고의 미스터리 하나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대한의군 총대장이 김두성이라는 진술이다. 일제의 철저한 수사에도, 그리고 독립운동사 어디에도 김두성이라는 인물은 영원히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껏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나는 그가 유인석이라고 믿는다. 안중근이 ‘김두성은 강원도 사람이며 그 부하에 허위, 이강년, 민긍호, 홍범도, 이범윤, 신돌석 등이 있다’고 진술한 바, 이에 부합하는 인물은 유인석 외에 없다.

두성은 큰 별이고, 큰 별은 한별이고, 한별은 일성(一星)이 되었다가 태양이 되니(日成) 김성주라는 본명에서 변모해간 북한의 김일성 주석 이름의 뿌리 또한 두성에 있다는 게 마음대로 펼쳐본 나의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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