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 가서 살라고”

새 정부서도 토지보상법 개정 없이 반복되는 토지강제수용
신도시 예정된 남양주·하남·과천 원주민들, 집단 반발 나서

  • 입력 2019.01.13 18:00
  • 수정 2019.01.13 19:1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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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신월리 일대에 왕숙신도시 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두 대책위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진건읍 일대 도로는 현재 3기 신도시 지정 철폐를 주장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여있는 상태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신월리 일대에 왕숙신도시 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두 대책위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진건읍 일대 도로는 현재 3기 신도시 지정 철폐를 주장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여있는 상태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수용은 피해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사유재산 강탈로 취급돼 왔다. 국가 발전을 명목으로 원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강행되는 데다 토지에 대한 보상도 실거래가가 아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진행돼서다. 현실성 없는 토지보상법이 개선되지 않은 채 새 정부에서도 강제수용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1일 집값 안정 대책으로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수도권 곳곳의 집값이 들썩이던 가운데 결국 지난해 12월 19일, 정부는 최종적으로 남양주 왕숙·하남 교산·과천지구(이상 경기도) 그리고 계양지구(인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가 상승을 이유로 발표직전까지 최종 선정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던 터라 예정지마다 날벼락을 맞은 분위기가 관측되고 있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크고 예정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남양주 왕숙지구 예정지의 충격이 컸다. 남양주에서 총 6만6,000가구 수용을 위해 계획된 부지 규모는 343만평으로, 이곳에서만 1,000ha가 넘는 녹지가 사라질 예정이다.

예정지 원주민들에겐 곧 대규모 토지수용이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와 같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수용은 그 적절치 않은 보상금액과 강제성 때문에 종종 사회적 이슈가 돼 왔다. 이 문제를 다루는 변호사들조차 ‘강제’라는 수식어를 붙여 토지강제수용으로 언급하며 영업하는 상황이다.

이 사태 이전부터 남양주에는 ‘개발제한구역 국민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이 활동하고 있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토지는 원칙적으로 논밭과 임야 이외의 용도로는 쓸 수 없지만, 현재 남양주 진건읍 일대는 비닐하우스 숫자만큼이나 물류창고가 많다. 농업과 관련이 없는 창고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국토부와 남양주시는 난립하는 창고들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이 대책위는 창고를 소유하거나 빌려 임대업을 해오던 이들이 주축으로, 느닷없이 수용 소식이 들리자 극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24일 남양주시청에서 3기 신도시 지정을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었다. 대책위는 공시지가 기준의 터무니없이 낮은 보상금을 문제 삼으며 신도시 지정철회를 주장하는 동시에 개발제한구역 내 물류업의 양성화를 요구하고 있다.

원주민들도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왕숙지구 예정지는 비닐하우스가 많은 시설농업 지역으로 원주민들 대부분은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농민들이다. 진건읍 신월리·진관리·사능리 등 수용지역의 농촌마을들은 지난 5일 총회를 열고 ‘남양주 왕숙공동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를 따로 창립했다. 각 마을마다 대표를 선출해 집행부를 구성하고 남양주시를 상대로 한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시설농업과 부동산업을 겸업하고 있는 신월2리 대표 박상원씨는 “원주민 대부분은 대대로 이곳에 살며 땅을 일군 사람들”이라며 “이번 발표를 보면 집도 밭도 모조리 수용 구역에 들어가 있는데, 이렇게 전부 내달라는 것은 원주민들의 생계 자체를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진건읍 일대의 농지 가격은 평당 150만원 수준. 그러나 공시지가는 그보다 한참 낮은 50만원대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액을 정하는 토지보상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그간의 공공수용 사례들에 비춰봤을 때 보상금은 많아도 평당 70~80만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이해당사자들의 우려다. 그러나 주민대책위는 보상 금액의 문제와 상관없이 계속 이곳에 남아 거주하기를 원하고 있다.

두 집단의 목적은 상이하나 어쨌든 ‘신도시 지정 철회’라는 제 1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남양주시는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하남 교산지구 예정지 주민 역시 지난해 말 대책위를 구성하고 대응에 나선다. 화훼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과천 예정지의 화훼농가들도 생계가 걸린 문제라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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