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내부의 질서

“인생·가정·농장·조직의 질서가
바라는대로 작동되는지 점검해야겠다”

  • 입력 2019.01.13 18:00
  • 기자명 최용혁(충남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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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제법 평온한 가정처럼 보일 것이다. 누가 봐도 여우같은 아내와 누가 봐도 토끼같은 자식과 또 누가 봐도 책임감 있고 건실한, 여우의 남편, 토끼의 아버지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의 정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온함이 공짜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정이 꾸려진 역사 이래로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고도 팽팽한 질서가 날마다 생겨나고 사라지며 유지되는지 그 누가 알랴! 아내와의 관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수직 관계인지, 어떤 것은 말해도 되고, 어떤 것은 말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폭발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평온을 되찾는지에 관한 세부 사항이 핏줄 안에 촘촘히 저장되어 있다. 글로 풀어 쓴다면 ‘태백산맥’보다 짧다고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단 일합만으로도 몇 페이지 몇째 줄이 어긋나 있는지 알 수 있다. 믿기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내가 만들어 놓은 일이다.

경범죄 정도의 사고야 날마다 일어난다. 그러다가 간혹 질서가 심하게 뒤틀리는 때가 있다. 이 때는 누구라도 가장 먼저 선수 교체를 고민하게 마련이다. 여우같은 아내 대신 곰같은 아내였더라면. 새로운 라인업을 구성해서 새 출발한다면 내 인생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겨난다. 맞다. 지옥 같은 오늘을 사는 힘은 희망이다. “그래, 원대한 꿈을 꿔라!” 다독여 주고 싶지만, 구성요소를 바꾸어서 새로운 실체를 만드는 실험은 가능할까?

자연에서 답을 찾아보자. 매우 비과학적인 두 가지 예를 들겠다.

첫째, 유정란이 무정란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 보면 영양학자들은 즉각 똑같은 영양 성분이라고 답한다. 다만 믿고 싶은 가설은 생명을 품은 계란이 가지는 에너지의 세기, 기의 밀도와 관련한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과학적 근거라는 벽 앞에서 더욱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둘째,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탄소(C) 원소로만 이뤄진 동소체이다. 동소체란 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을 분석하면 같은 화학 조성을 갖지만 원자의 배열 상태, 결합 구조 등이 달라 서로 성질이 다른 물질을 말한다. 빛나고 투명하고 아름답고 비싼 다이아몬드와 연필심을 원자의 상태로 쪼개 놓으면 둘 다 모두 탄소로만 이뤄졌다는 말이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을 결정짓는 것은 탄소 자체가 아니라 탄소의 결합상태와 밀도인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분해해서 다시 결합시키면 흑연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물의 실체란 구성 요소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새겨 놓은 내부의 질서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수 교체라는 원대한 희망을 꿈꾸다가 먼저 교체당할 수도 있다. 정신 바짝 차리자. 먼저 내 인생, 내 가정, 내 농장, 내 조직의 질서가 바라는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새해에 점검해봐야겠다. 손흥민, 기성용을 영입하거나 여우, 곰을 비롯해서 세렝게티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차례대로 대입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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