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식약처, 농업 망칠라

  • 입력 2019.01.13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류영진, 식약처) 정문 앞에선 대한양계협회가 한 달여 동안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꽁꽁 싸맨 농성장이지만 매서운 추위 탓인지, 아직 주위에 빈 땅이 많은 탓인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양계협회는 달걀 산란일자 표기 철회와 식용란선별포장업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일 농성 28일만에 식약처와 1차 TF 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서로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식약처는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전면 시행 때에도 농민들과 소통에 무성의한 모습을 보였다. 농민들은 현장에서 야기될 문제점을 고칠 때까지 유예하길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시행 이후 개선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식약처는 소비자에게 안전한 농축산물을 공급하려면 제도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각론을 들여다보면 대개 소비자 안전과 연관성을 찾기 어렵거나 한시라도 빨리 도입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라 하기 어렵다.

농업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 도입 등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무책임한 행보에 농민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약처 앞에서 열린 ‘농민 생존권 말살, 국민 먹거리안전 위협 식약처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1,000여명의 농민·도시 소비자들이 ‘농민 생존권 말살 식약처 규탄’ 등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한승호 기자
농업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 도입 등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무책임한 행보에 농민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약처 앞에서 열린 ‘농민 생존권 말살, 국민 먹거리안전 위협 식약처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1,000여명의 농민·도시 소비자들이 ‘농민 생존권 말살 식약처 규탄’ 등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한승호 기자

정작 식약처는 GMO 감자 수입을 허용하면서 안전성을 단언했지만 소비자생협들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모여 지난해 12월 14일 식약처 앞에서 열었던 식약처 규탄 범국민대회는 아집만 남은 식약처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기실 식약처는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부터 계속 논란의 도마에 올라왔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며 전문성 부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다. 농업에 관한 이해도가 낮으며 농민과 소통하려는 행보도 보이지 않고 있다.

조직의 수장뿐 아니라 식약처란 조직 자체가 농업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PLS, 식용란선별포장업 등의 정책들이 현장에서 실제 적용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PLS가 전면 시행되며 농약별로 살포횟수를 준수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식용란선별포장업은 오는 4월부터 시행되는데 허가를 받은 업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규제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현실을 놓친 셈이다.

이들 대책은 농산물의 안전성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책임을 회피하고자 급조한 면피성 정책이란 의혹이 짙다. 일단 각종 규제를 강화해 국민의 눈을 잠시라도 돌려보고 문제점이 발견될 때마다 땜빵식 처방을 내놓겠다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란 것이다.

어떻게 식약처는 이처럼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식약처는 농업이 망해도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는 2013년 1월, 식약청을 식약처로 승격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갖고 있던 농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를 이관했다. 농축산물의 생산·유통·소비에 전문성을 갖지 못한 식약처가 농식품부 대신 감독권한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식약처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농식품부 등 농업기관이나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다. 이들 기관은 농업이 망하면 꼼짝없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데 비현실적인 정책을 현장에 도입시켜야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이들 기관이 책임감을 갖기는 쉽지 않다.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식약처는 권한만 가지려할 뿐,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저히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기관이 업무를 맡아야 한다. 농축산물 안전관리업무 일원화를 조직간 힘겨루기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