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나 마나’ 수입보장보험, 그마저도 ‘선착순’

현실 동떨어진 기준에 보험금은 생산비 절반 수준
정책 실패로 인한 선착순 가입 … 농가 차별 야기

  • 입력 2019.01.1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업수입보장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보험금 지급 기준이 까다롭고 지급된 금액도 실제 생산비에는 턱없이 모자라 농민들 사이에서 ‘보험 무용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전남 무안에서 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한 여성농민의 모습. 한승호 기자
농업수입보장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보험금 지급 기준이 까다롭고 지급된 금액도 실제 생산비에는 턱없이 모자라 농민들 사이에서 ‘보험 무용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전남 무안에서 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한 여성농민의 모습. 한승호 기자

 

농가 소득보전을 목적으로 운용되는 농업수입보장보험은 그간 농민들 사이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게다가 최근엔 보험 가입까지 선착순으로 제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농업수입보장보험은 농가의 소득 및 경영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콩·포도·양파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마늘과 고구마·가을감자, 양배추 등이 추가돼 총 7개 품목으로 운영 중이며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사업 지역도 도입 당시 14개 시·군에서 지난해 35개로 확대됐다.

또 수입보장보험은 재해보험과 마찬가지로 순보험료의 50%를 정부가 국고로 보조한다. 여기에 지자체별 지원을 제하면 대부분 농가가 내야할 보험료는 전체의 15~20% 정도를 차지한다. 보장유형은 보험가입금액의 60·70·80·85·90%로 나뉘며, 이를 자기부담비율이라 일컫고 보험금 산출 시 피해율에서 차감된다.

보험사 측 설명에 따르면 수입보장보험은 기존 농작물재해보험에 농산물 가격하락을 반영한 상품으로, 보험금 산출 시 기준가격과 수확기가격 중 낮은 가격을 적용한다. 이에 수확기가격이 상승했어도 보험금 지급에 적용되는 가격은 가입 시 결정된 기준가격이 된다. 때문에 실제 수입을 산정할 때 수확량이 평년보다 적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수확기가격이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수확량 감소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또 보험 가입은 대부분 파종기에 이뤄진다. 고구마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은 가입 후 이듬해인 수확기까지 그 효력이 유지된다. 때문에 2017년 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2018년 수확기 전까지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고, 2018년에 가입한 농가는 올해 수확량이 감소하거나 가격이 하락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보장 받기엔 너무 먼 기준

하지만 수입보장보험을 두고 농민들 사이에선 ‘가입하면 바보’란 인식이 팽배하다. 보장받기가 쉽지 않아 납부한 보험료를 날리기 일쑤고 보험금을 받더라도 작물을 재배하며 들인 생산비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제주 안덕면에서 콩을 재배하는 한 농민은 “가격하락까지 보장해준다기에 보험에 가입했다. 폐농 위기까진 아니었지만 재해로 수확량이 감소했고, 보험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사 결과 피해율이 기준에 못 미친다며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농민 역시 “보험의 지급기준이라는 게 농업·농촌 현실과 맞지 않다. 지난 2017년 보험에 가입했고 2018년 두 번의 태풍이 불었다. 농사짓는 농민이 느끼기엔 피해가 있는데 보험사에서는 평년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며 “태풍만 안 불었어도 수확량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보험이 무얼 보장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수확량이나 가격이 어림잡아 30% 정도 떨어져야 보험금을 주는 것 같은데 자부담 제하고 나면 무슨 큰 도움이나 될까 싶다”고 밝혔다.

 

‘28분’ 만에 끝난 보험 가입

올해는 유난히도 자연재해가 잦았다. 그 탓에 평년대비 꽤 많은 보험금이 농가에 지급됐고 일부에선 보험 가입으로 그나마 생산비 일부라도 건졌다는 평이 돌았다.

하지만 올해 보험 가입은 몇몇 농가에 한정됐다. 특히 지난해 냉해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가격 폭락을 동시에 겪은 무안 양파의 경우, 28분만에 보험 가입이 종료됐다는 후문까지 돌 정도였다.

지난 7일 전남 무안군에서 만난 농민 고송자(70)씨는 “11월 말까지가 보험 가입기간이다. 한창 양파 심기 바쁜 시기기도 하거니와 농민들이 날짜 세어가며 보험 가입 시작하는 날을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대부분 보험 가입을 서두르지 못하는 여건인데, 올해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가입을 선착순으로 받았다고 했다. 정책을 만든 정부가 농민들 간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전남 무안군의 일선 농협에선 농업수입보장보험 가입이 28분 만에 끝났고 가입자는 단 10명에 불과했다. 정부는 그간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농민에게 보험 가입을 독려했지만, 현장에선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가입을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예산은 2017년 46억4,900만원 보다 많은 51억4,900만원이다. 정부 예산은 농가의 보험 가입을 막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고, 보험 가입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보험 그 자체가 가진 오류 때문으로 판단된다.

보험금 산정에 활용되는 기준가격은 가입 직전 5년의 가락도매시장 중·상품 올림픽 평균값에 농가수취비율을 곱하여 산출한다. 올림픽 평균값은 최대·최소를 제외한 수치다. 때문에 가격 하락이 잦은 양파·마늘의 경우 기준가격보다 수확기가격이 낮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농가에서 보험금 지급을 미리 예측·가입하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농식품부와 농업정책보험금융원(원장 김윤종, 농금원)은 해당 역선택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농협손해보험으로 하여금 지난해 보험 가입을 제한했다. 이어 해당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란 입장과 함께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할 경우 농업수입보장보험의 시범사업을 중단·폐지할 계획도 있다고도 밝혔다.

한편, 농금원으로부터 제공받은 ‘농업수입보장보험 시범사업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보험 가입률은 폭등했다. 특히 양파·마늘 품목에 가입이 급증했는데, 보험 가입 농가는 각각 1,407호와 1,533호며 순보험료는 100억500만원 및 113억9,200만원에 달했다. 2016년 실적이 양파 157농가, 7억3,400만원 및 마늘 97농가, 3억9,700만원인 것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그에 따른 손해율 역시 2016년 양파 87.5% 마늘 144.8%에서 2017년 각각 202%와 176.6%로 늘었다.

가격하락이 잦은 품목인 양파·마늘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농업수입보장보험은 그나마 생산비 일부라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셈이다. 지난 2017년 보험에 가입해 2018년 보험금을 지급받은 무안의 한 양파 재배 농민은 2,000평 기준 약 100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했고, 1,000만원 정도의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해당 농민은 인건비 포함 생산에 들어간 비용을 2,000만원으로 가정했는데, 자부담을 제하면 보험금은 생산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나 농민은 보험이라도 있어 올해 농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빈번한 재해나 가격폭락 등을 피해 농가가 생산비를 보전받고 다음 영농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소득 보장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