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차② 서울에 전차 들어오던 날

  • 입력 2019.01.1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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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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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서울에 전차가 도입된 때가 1899년 무렵으로 아는데…그러니까 당시 미국 사람이 조선 황실로부터 영업권을 얻어가지고 종로에서 청량리까지 갔던 것이 시초라던가….”

1929년생으로 청계천 일대에서 ‘서울의원’이라는 동네의원을 운영하며 살아온 이성선 원장은, 우리나라에 처음 전차가 도입된 내력을 이렇게 들었노라고 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1898년 2월, 고종의 명을 받은 육군총장 이학균이 콜브란(Corlbran)이라는 미국 사람과 마주 앉았다, 이학균이 먼저 입을 연다.

“궁궐 안에 전등이 가설된 이후에, 우리 황제 폐하께서도 전기를 이용한 근대문명의 도입에 아주 적극적이십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얘깁니다.”

“그런데 이번에 당신들이 하겠다는 전차사업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흐음, 이미 궁궐에 전깃불을 켜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전기의 힘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차를 만들어서 운행을 한다, 이런 얘기지요.”

“그럼 어디 사업계획을 설명해 보세요.”

“우리 계획은 이렇습니다. 일단 자본금 150만원을 공동으로 조성해서 <한미전기회사>를 설립해야 합니다. 이 전기회사에 전차, 전화, 전등 사업의 독점권을 주셔야 합니다. 그 대신에 국왕폐하께서 자본금의 절반인 75만원을 출자해서 공동운영 하기로 하자, 이런 제안입니다.”

“하지만 지금 황실의 재정 사정이 썩 안 좋은데 너무 과도한 액수 아닙니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고종 황제께서 명성황후의 능이 있는 홍릉에 자주 나가시는데, 그 때마다 가마를 탄 신하들이 뒤따르게 돼 있어서, 한 번 능행을 하는 데에 10만원이나 되는 경비가 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차가 개통 되면, 우리는 특별히 고급 차량 한 대를 도입해서 황실전용 전차로 제공을 할 것입니다, 하하하.”

이런 협상과정을 거쳐서 <한미전기회사>가 설립되었고,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의 1단계 공사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1899년 음력 4월 초파일에, 개방식 차량 8대를 들여와서 역사적인 전차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전차의 역사는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그 첫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전차의 운전수는 우리보다 5년 먼저 전차를 개통하여 운행하고 있던 일본으로부터 데리고 왔다.

“히야아, 그러니까, 저 집채보다 큰 차가 사람을 40명이나 싣고서 저절로 움직여서 굴러간다 이 말이야?”

“그 참, 말이나 소가 안 끌어도 저렇게 큰놈이 쇠붙이로 만든 길 위로 달려간다니 신통방통한 일이구먼. 어어, 움직인다!”

전차가 종을 딸랑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본 그 신기한 탈것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개통식을 치르고 난 며칠 뒤에 파고다(탑골) 공원 앞길에서 5살짜리 아이가 전차에 치여 죽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의 탄성이 순식간에 저주로 바뀌었다.

“사람 죽이는 저 괴물덩어리를 없애버려야 돼!”

“저놈의 흉측한 물건을 다 때려 부숴 버리자고. 아니, 아예 불을 질러서 태워 버립시다!”

그러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일본인 운전수들은 본국으로 달아나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용 승객이 늘어나자 전차노선은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다시 원효로까지 연장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면서, 미국인 콜브란 일행은 174만원을 받고서 <한미전기회사>를 일본사람에게 넘겨버렸다. 그 과정에서 고종이 가지고 있던 절반의 지분은 무시되고 말았다. 그 때부터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전차를 비롯한 모든 전기 사업권은 일본인 회사였던 경전(京電) 즉, <경성전기주식회사>가 독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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