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는 허가제, 분뇨처리공장은 신고제?

면적 5,000㎡ 넘지 않으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불필요
주민들 “혐오시설이 어찌 협의도 없이 들어올 수 있나”
정읍시, 영원면민 극렬 반발에 결국 공사 중지 명령 예고

  • 입력 2019.01.06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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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정읍시 영원면민들이 면내에 공사 중인 축분 처리공장의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시장 면담을 요청하자 유진섭 정읍시장(가운데)이 시청 앞으로 나와 응대하고 있다. 유 시장은 이날 공사 중지 명령을 약속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정읍시 영원면민들이 면내에 공사 중인 축분 처리공장의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시장 면담을 요청하자 유진섭 정읍시장(가운데)이 시청 앞으로 나와 응대하고 있다. 유 시장은 이날 공사 중지 명령을 약속했다.

 

전국적으로 축산으로 인한 악취가 많은 분쟁을 낳고 있다. 정읍에선 이미 허가를 받아 공사가 진행 중인 한 가축분뇨처리공장이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해 공사가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주민 사전 협의가 전혀 없이 추진된 혐오시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면내 모든 이장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주민 전체가 이를 막기 위해 굳건히 뭉친 가운데, 정읍시가 결국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어떤 선례를 남길지 주목된다.

전북 정읍시 영원면 돈분처리시설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8일 정읍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영원면 앵성리 일대에 허가한 돈분 퇴·액비화 시설의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영원면은 다른 읍면에 비해 돼지 사육농가가 4곳에 불과하고 이미 처리시설이 충분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분뇨를 가져다 공장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라며 “추진과정도 주민 공청회나 사업 설명회 한 번 없이 밀실 행정으로 건축허가를 내줌으로써 주민들을 기만했다”고 반발했다.

기자회견문을 요약하면, 면민들과 아무 협의도 없이 혐오시설을 들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거니와 영원면이 다른 지역의 분뇨처리장으로 쓰이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이순봉 대책위원장은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낸 결과”라며 “이런 혐오시설이 들어올 때는 면민들을 모아서 물어보고 결정해야 맞는 일이지, 공무원 몇 명이서 결정하고 나중에서야 통보하는 게 행정인가”라고 주장했다. 전병수 영원면 이장협의회장의 제안으로 영원면의 이장들과 부녀회장들, 그리고 주민자치위원들은 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읍시는 그간 해당 가축분뇨처리시설의 설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한편 주민들과 운영업체 사이를 중재하려고 시도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가축분뇨의 배출시설 및 처리시설은 그 면적의 합계가 5,000㎡가 넘지 않는 경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거칠 의무가 없다. 현재 영원면에 건설되는 시설의 면적은 3,000㎡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이다.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처리시설의 의무는 시설수준과 운영방법을 주로 다룰 뿐, 주변 거주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가축사육제한구역 또한 ‘사육’ 행위만을 제재한다.

시간이 흘러도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면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 이날 집회의 배경이다. 한 시간 가량의 집회를 마친 주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곧바로 청사 앞으로 몰려가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진입을 시도했다. 청원경찰이 이를 막기 위해 정문 앞에서 진을 치는 가운데 시청과 시의회 내 공무원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해 1층 로비에서 대기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시 측은 이순봉 대책위원장 등 주민 대표만을 들여보냈고, 이들이 유진섭 정읍시장과 한 시간 가량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야 엄동설한 속 대치가 끝났다.

면담을 마친 면민대표들과 함께 시청 로비에 나타난 유 시장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항의하자 유 시장과 정읍시 관계자들은 “절차를 마치는 대로 면민들에게 공문을 보내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유 시장의 약속대로 이미 허가가 떨어진 공장의 건설을 중지시킬 경우 시와 운영업체와의 법적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읍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공장 건축에 문제가 없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으나, 시장님이 구두로 약속하신 만큼 주민들의 탄원서가 들어오면 검토 후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영원면 주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박용희 정읍시농민회장은 “축분 처리공장은 우리 축산 현실을 생각하면 필요한 시설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협의를 거쳐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점을 찾으며 진행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분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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