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아닌 ‘쇼’에 불과했던 간담회

청와대의 농민 초청 간담회, 농정 불신 가중시켜
문 대통령, 농민과는 75분 … 여당 원로와는 110분

  • 입력 2019.01.06 18:00
  • 수정 2019.01.08 09:0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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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 ‘밥상이 힘이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년농부 한태웅군이 수확한 쌀 5kg 1포를 건네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 ‘밥상이 힘이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년농부 한태웅군이 수확한 쌀 5kg 1포를 건네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농민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뒤 1년 7개월 만에 보인 첫 농업 행보였다. 과정이야 어쨌든 드디어 자리가 성사된 것만으로도 기대를 가져볼만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소문으로만 듣던, 소통을 빙자한 ‘쇼’에 가까운 시간이었다는 농민들의 후문이 들려온다.

애초 농민들의 절규가 없었다면 과연 스스로 소통에 나섰을지 의문스러웠다. 새 정부 농정은 1년 만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대안 농정으로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내밀었다. 지난해 9월, 네 명의 농민이 참다못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농성이 바로 이 간담회가 열린 배경이었다. 그들과 동료들의 단식이 한 달을 넘기고, 많은 단체가 동참해 목소리가 커진 뒤에야 청와대는 마지못해 면담을 약속했다. 농성천막이 세워진 지 2개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농업계의 대통령 대면에 대한 갈망은 그간 거센 파도와도 같았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업을 살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이 줄줄이 사퇴하자 거의 전 농업계가 참여하는 공동행동이 출범해 대통령의 각성을 촉구해왔다. 이제야말로 대통령이 나서서 그 권한으로 농정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농업을 살릴 ‘골든타임’은 곧 끝날 거란 주장이었다.

그간 정부 농정을 지켜보며 농민들이 쌓은 불신을 생각하면, 청와대와 농식품부는 마땅히 심도 있는 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행사를 기획했어야 했다. 그러나 75분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농정개혁과는 아무 상관없는 소년농부 띄워주기와 그의 노래자랑,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발표하는 관료들의 업무보고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할애됐다.

농민들은 100명이 넘게 초청됐으나 그나마도 발언권을 얻은 농민은 8명에 불과했다. 얼마 없는 자리는 누가 더 많은 발언권을 얻는 게 정당한지를 두고 농민단체 간 불화를 야기했다. 간담회 자체가 무산될 뻔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그 소수와의 대화도 간담회라고 부르기 무색한 수준이었다. 사전에 지정된 사람들이 사전에 지정된 순서대로 발언한 뒤 대통령이 맺음말로 답하며 마무리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이 자리에 있었던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은 “농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농업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라며 “간담회 형태나 내용이야 어쨌든 대통령이 마무리 발언에서 그 약속만 했어도 (점수를) 70점은 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김영재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이날 농민단체 대표 자격으로 얻은 발언 기회에서 “국민 먹거리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환경보전 같은 공익적 기능을 강조하는 농정으로 국민과 함께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대통령님께서 직접 힘 있게 제시해주시길 바란다”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어업 비서관·행정관들의 보고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대통령이 현실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 언급 대신 돌아온 것은 “그래도 잘하고 있다”라는 자화자찬이었다. 대통령의 박수유도에 농민들은 여당 국회의원과 농식품부 관료들을 향해 함께 박수를 쳐주는 박수부대로 전락했다. 간담회장에 걸린 ‘밥상이 힘이다’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대통령은 그의 표현 그대로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애써주신 농업인’들을 불러 놓고 식사 한 번 갖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날 대통령의 점심 밥상엔 애써 청와대를 방문한 농민들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원로들이 장장 110분 동안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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