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감귤 ‘종자전쟁’ 발발

  • 입력 2019.01.0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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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감귤에 대한 일본의 품종보호 출원에 제주의 일부 농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문제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서 문제가 된 미하야와 아수미 품종을 재배 중인 감귤농가 김공일(75, 가운데)씨의 하우스에서 양봉호(74, 왼쪽)·문형택(82)씨가 굳은 표정으로 11월 수확기를 지나 축 늘어진 미하야 품종의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감귤에 대한 일본의 품종보호 출원에 제주의 일부 농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문제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서 문제가 된 미하야와 아수미 품종을 재배 중인 감귤농가 김공일(75, 가운데)씨의 하우스에서 양봉호(74, 왼쪽)·문형택(82)씨가 굳은 표정으로 11월 수확기를 지나 축 늘어진 미하야 품종의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수 년 동안 공들여 과수를 키운 농민들이 로열티 문제에 부딪혀 과실을 팔지 못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감귤 신품종인 ‘미하야’와 ‘아수미’ 얘기다. 제주에 울려퍼진 ‘종자전쟁’의 총성이 감귤농가들의 숨통을 바짝 옥죄고 있다.

미하야와 아수미는 일본의 국가연구기관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가 개발한 품종이다. 당도가 높고 식감이 좋아 일본에서도 유망품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4~5년 전부터 이를 들여와 하나둘 식재·접붙이기를 시작했고 지난 겨울 첫 출하를 거쳐 올 겨울 본격 출하를 시작할 참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일본이 우리나라에 품종보호를 출원하면서부터다. 품종보호를 받게 되면 특허와 같이 품종 이용에 대한 독점권이 부여되고, 타인이 이를 이용할 경우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일본 측은 품종보호 출원으로 지난해 1월 15일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으로부터 미하야·아수미에 대한 품종 임시보호권을 인정받았다.

품종 문제가 불거지자 농민들의 유통을 책임지던 농협들은 두 품종의 수매에서 한순간에 손을 떼버렸다. 출하기가 닥쳐도 익어가는 감귤을 내다 팔 수 없고, 그로 인한 모든 손해를 농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돌아가는 정황을 살펴보면 미하야·아수미를 재배하고 있는 농민들이 종자를 훔쳐 심은 도둑으로 내몰린 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국립종자원으로부터 미하야·아수미 수입 판매 허가를 받은 종묘업자들을 통해 종자를 구입했다. 종자의 수입 과정과 이를 허가하는 과정에 뭔가 하자가 있었다는 뜻으로, 재배 농민들이 손해와 비난을 모두 감당하는 건 부당한 면이 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품종 임시보호권의 효력이 “수확물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심어 놓은 나무의 과실을 일단은 수확해 판매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특정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및 다른 법령조항에 대한 해석은 제외했다”며 다소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문구를 덧붙여 일부 농협들은 여전히 수매를 주저하고 있다.

만약 품종보호에 이어 일본 측이 작심하고 법적 대응을 이어갈 경우 결국 농민들이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나무를 베어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이 국내 굴지의 로펌 ‘김앤장’을 동원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불안감은 더욱 크다.

들어본 적도 없는 비주류 품종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온주감귤은 물론 1990년대 이후 성장한 한라봉·레드향·천혜향·황금향 등 국내에 뿌리내린 쟁쟁한 품종들 역시 모두 일본에서 들여와 이름만 바꾼 품종들이다. 그동안 품종보호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던 일본이 비로소 권리 찾기에 나섰을 뿐이다.

온주·한라봉 등 기존의 주류 품종들은 품종보호 출원 유효기간이 경과해 일본이 새삼 품종보호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문제는 소비자의 선호를 따라 끊임없이 신품종을 모색해야 할 앞으로에 있다. 갑작스레 촉발된 ‘종자전쟁’에, 농민들과 감귤산업 관계자들 모두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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