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감귤 품종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석연찮게 행해진 품종 거래
관리감독 맹점 보인 종자원
농가문제 등 돌린 지역농협
자립능력 못 갖춘 육종체계

  • 입력 2019.01.06 18:00
  • 수정 2019.01.06 18:2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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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미하야’·‘아수미’ 감귤 품종 사태에서 모든 농민들이 결백하고 억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태의 원인을 따지자면 소수 몇몇 농민의 일탈보다도 다른 주체들의 책임이 더 명확하게 부각된다.

문제의 1차적인 원인은 종묘업자들의 품종 거래 과정에 있다. 국내 6개 종묘업체들은 일본에서 미하야·아수미를 사들여 2014년과 2015년 국립종자원으로부터 수입판매 허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17년과 2018년 일본은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미하야·아수미 품종보호를 출원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국립종자원에 수입판매신고와 품종보호출원이 동시에 접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국 과수종자의 품종보호 요건이 ‘6년 동안 종자 및 수확물을 이용 목적으로 양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종묘업체들은 이용 목적으로 두 품종을 양도받았다고 수입판매 신고를 했는데 일본 측은 양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품종보호를 출원했다.

일본 측이 생떼를 쓰는 상황이 아니라면 품종을 개발한 일본 기구는 어디에도 정식으로 종자를 판매한 사실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뒷거래가 이뤄졌거나 브로커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고의든 아니든 석연찮은 방법으로 품종을 거래한 종묘업자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고, 보안 관리에 소홀했던 일본 당국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혼란을 증폭시킨 건 국립종자원이다. 종묘업자들의 수입판매신고에 대한 검증과 감독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거래 경위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수입판매를 허가하자, 농민들은 국립종자원을 믿고 종묘업체들로부터 미하야·아스미를 구입했다. 애당초 국립종자원의 감독체계가 견고했다면 이번 사태는 일부 종묘업자나 농가 개인의 비위 사건으로 그쳤을 것이다.

제주 애월농협에서 만난 감귤농가들이 육묘업자로부터 받은 국립종자원장 직인이 찍힌 품종 생산·수입판매 신고증명서를 내보이며 정상적 절차를 통해 재배했음에도 도둑으로 내몰린 현실을 성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 애월농협에서 만난 감귤농가들이 육묘업자로부터 받은 국립종자원장 직인이 찍힌 품종 생산·수입판매 신고증명서를 내보이며 정상적 절차를 통해 재배했음에도 도둑으로 내몰린 현실을 성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관념상의 혼란을 가장 먼저 농가 피해로 현실화시킨 건 농협이다. 종자 문제가 불거지자 수매를 담당하던 지역농협들은 재빨리 두 품종에서 손을 뗌으로써 농민들의 판로를 봉쇄했다. 유통사업자로서 분쟁의 소지가 있는 품종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농민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감안하면 도의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농협의 철수로 인해 농민들은 한순간이나마 모든 죄와 벌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감귤 육종체계의 부실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감귤 육종 역사는 28년에 불과하다. 이제 막 신품종을 개발해 내놓기 시작했지만 점유율이 2.3%에 그칠 정도로 시장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국내에서 좋은 품종이 나오지 않으니 감귤 종자는 전적으로 일본에 의지하고 있다. 일본의 비주류 품종인 한라봉·천혜향·황금향 등이 암암리에 국내로 들어와 정착했고 이것이 하나의 관행이 돼버렸다. 일본으로선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불만을 표출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감귤 육종 연구인력은 4명이다. 김우남 전 제주지역구 국회의원의 2015년 발표자료를 보면 일본엔 35명(민간 제외), 중국엔 33명(지방 제외)의 감귤 육종 전담인력이 있다. 육종 연구의 가장 큰 무기인 역사에서부터 크게 뒤쳐진 우리나라가 앞으로 감귤 종자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선, 미흡한 육성체계에 대한 정부의 각성과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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