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생태보전성’ 살피는 국제기준과 동떨어진 친환경농정

국제 유기농업 기준, 작물 영양상태 및 토양 생물 징후 등 살펴

  • 입력 2019.01.01 00:00
  • 수정 2019.01.02 09:5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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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왜 정부의 친환경농정이 오히려 진짜 친환경농업을 가로막는지 이해하려면, 지금 정부 친환경농정의 사실상 핵심기조인 ‘안전한 농산물 생산’ 프레임을 이해해야 한다. 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농어업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제ㆍ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그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업ㆍ수산업ㆍ축산업ㆍ임업 부산물의 재활용 등을 통하여 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한 농산물·수산물·축산물·임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

법은 ‘생태환경 보전’과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친환경농어업법의 핵심 내용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 농촌현장에서 이뤄지는 정책은 철저히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러다 보니 농산물, 토양, 하천 등에서 농약이 얼마나 검출되는지만 과도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소비자들에게도 친환경농업의 목적을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방점을 둔 채 홍보해 왔다.

친환경농어업법 제2장 제12조는 ‘농어업자원과 농어업환경의 실태조사를 위해’ 필요할 시 관계 공무원의 친환경농지 출입 및 조사·평가에 필요한 최소량의 조사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농민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러한 조사행위를 거부·방해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된다고도 규정돼 있다.

법 규정부터가 사실상 농민에 대한 행정당국의 ‘갑질’을 정당화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친환경 채소를 재배하는 장인학씨는 “지난해 11월에도 농관원은 전국 친환경농민 176명을 대상으로 갑작스레 시료 채취 검사를 하는 등, 규제·단속·처벌 중심 친환경인증제는 여전하다”며 “심지어 농관원은 민간인증기관이 엄격하게 농가를 처분하지 않았다고 민간인증기관에까지 징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간인증기관들은 정부기관, 즉 농림축산식품부와 농관원의 눈치를 안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농관원은 2017년 당시 57군데의 친환경 민간인증기관 중 49군데를 규정 위반 명목으로 적발했는데, 그 중 5군데에 기관 지정 취소 처분, 30군데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2017년 여름 ‘살충제 계란 파동’ 뒤 민간인증기관을 단속해 먹거리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지난해 상반기부턴 민간인증기관에 대한 평가등급제를 실시해, 평가 결과 3회 연속으로 ‘미흡’ 판정을 받은 인증기관은 퇴출시키기로 했다.

현행 친환경인증제 하에선 순환농법의 핵심인 축분과 볏짚도 마음 놓고 못 쓴다. 축분과 볏짚에서도 잔류농약이 검출돼 인증 취소당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경기도의 한 농민은 농약 한 번 친 적 없음에도 미나리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인증을 취소당했다. 농사지을 때 사용한 계분(鷄糞)에 농약이 혼입돼 벌어진 일이었다.

장인학씨는 “친환경농사 과정에서 축분이나 볏짚을 통한 토양 유익균 및 미네랄 배양을 연구하는 농민들이 많다. 미생물과 이를 이용한 친환경농자재를 자가제조하려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처럼 공시된 유기농자재 위주의 친환경농사를 강요하는 제도로는, 유익균 배양 등 친환경농법 개발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아이폼)은 유기농 인증심사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핀다. △작물의 영양결핍 징후 △잡초의 밀도 및 상태, 냄새 △농작물과 잡초의 뿌리 침투력 △토양 경화 여부 △흙냄새 및 윤기 여부 △토양에 서식하는 생물의 활동 징후 △잡초 군락 구성 등이다. 아이폼은 이와 같은 현장 생태계 조사와 농가에서 수집한 구매내역서 등의 근거자료를 확인하나, 농가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아이폼에서 유기가공식품 인증심사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던 임석호 에코리더스인증원장은 지난해 12월 13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주최 ‘친환경농업, 이대로 괜찮은가?’ 심포지엄에서 위 아이폼의 인증 매뉴얼을 소개하며 “아이폼 감사관들은 한국 친환경농가의 영농일지를 보고 ‘Amazing!’이라 표현했다. 어떻게 이토록 빽빽하게 영농일지를 작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며 “독일 농가들의 경우 간단한 표로 (영농일지를)작성하거나 달력에 간단히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친환경인증제는 국제적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농민들의 답변은 “아니다”이다.

장인학씨는 “농관원은 항상 농약 검출 여부만을 살필 뿐, 토양이나 생태환경이 어떤지, 친환경농민이 농사를 더 잘 짓게 하기 위한 ‘과정’을 살피는 작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농관원 직원들은 2년이 지나면 타 농관련 기관으로 발령 나 떠난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으로 근무하며 친환경농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친환경농업계는 이제야말로 ‘안전한 먹거리 생산 프레임’을 넘어 ‘과정 중심의 친환경농업’이 절실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임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친환경인증은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이라며 “인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농가에 대한 위험평가와 부적합 사항에 대한 시정조치 매뉴얼의 미흡함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과정 중심 인증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인증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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