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잔류농약 검출’만 바라보다 ‘진짜 친환경농업’ 망친다

여전히 계속되는 ‘비의도적 농약 혼입’ 인한 인증취소
세계적으로 유례 찾기 힘든 ‘토양·수자원 잔류농약 검사’

  • 입력 2019.01.01 00:00
  • 수정 2019.01.02 1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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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과정’보다 ‘결과’를, ‘생태환경 살리기’보다 ‘잔류농약 검출 여부’를 더 따지는 친환경농정은 2018년에도 여전했다. 오염된 흙을, 더 나아가 생태환경을 살려보겠다는 농민들이 오히려 정부의 친환경농정 때문에 그 뜻의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농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 친환경농정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전북 군산시에서 친환경 쌀 재배를 25년간 해 온 이한세씨(위쪽 사진, 옆의 논은 2017년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인증 취소당했다)와 경기도 용인시에서 친환경 채소를 재배하는 장인학씨. 이들을 비롯한 친환경농민들은 한목소리로 ‘규제 중심, 결과 중심' 친환경농정을 ‘생태환경 보전의 과정을 살피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 군산시에서 친환경 쌀 재배를 25년간 해 온 이한세씨(위쪽 사진, 옆의 논은 2017년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인증 취소당했다)와 경기도 용인시에서 친환경 채소를 재배하는 장인학씨. 이들을 비롯한 친환경농민들은 한목소리로 ‘규제 중심, 결과 중심' 친환경농정을 ‘생태환경 보전의 과정을 살피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시의원으로 활동하는 이한세씨. 그는 인증제와는 별도로 생태친화적 농업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25년간 친환경 쌀 재배 방식을 고수했다. 그랬던 이씨가 친환경인증을 받은 건 유기농 쌀로 전통식초를 만들 구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무농약에서 유기농 단계로 가기 위한 전환기 과정을 거치던 중, 이씨는 2017년 9월 15일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친환경인증을 취소당했다. 이씨의 논에서 약 100m 떨어진 일반농가 농지에서 사용하던 광역방제기의 농약이 비산된 것이었다.

이씨는 비의도적 농약 혼입 사실을 입증한 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조재호, 농관원)에 재검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재검사 시 본인이 포함된 작목반의 나머지 63개 농가가 검사를 받아야 되고, 그 과정에서 한 농가라도 농약이 나오면 인증을 취소시키겠다는 농관원 측의 통보를 받고, 이씨는 결국 재검사 신청을 포기했다.

항공방제 및 광역방제기, 드론을 사용해 농약을 살포하는 영농방식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국 각 지자체도 이러한 영농방식을 지원한다. 농촌 고령화 심화, 일손 감소 등의 이유에서다.

군산시 성산면에서 친환경 쌀농사를 짓는 오주병씨는 “예전엔 친환경농지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하면 인근 관행농지에서 농약을 쳐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광역방제기 및 드론 사용이 늘어나면서, 가림막 치는 걸론 도저히 농약 비산을 막을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오씨는 “광역방제기의 경우 한 번 뿌리면 반경 400m까지 농약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나마 광역방제기는 기계 소음이 커서 일하다가 소리가 들리면 냅다 달려가 막기라도 하지, 드론은 소리가 작아서 그걸 누가 사용해도 전혀 모른 채 농약 비산 피해를 당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오씨는 2011년의 일도 소개했다.

“마을 주민 60명을 설득해 친환경농사에 참여시키고자 했다. 오염된 토양과 생태계를 친환경농업으로 살려보자는 의도였다. 농관원에서 해당 농가들이 농사짓는 땅의 토양을 검사했다. 처음엔 대부분 인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검사대상 200여 필지 중 20필지만 인증을 통과하고 나머지는 탈락했다. 나머지 땅에서 모두 잔류농약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그 오염된 땅을 살리자고 친환경농사를 결의한 건데, 땅이 오염됐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농사를 짓지 말라는 소리다. 뭔가 거꾸로 됐다고 생각했다.”

농관원은 여전히 농가의 토양에서 시료를 채취해 농약을 찾는 식의 검사방식을 고수한다. 지난해에도 농관원은 경기도 및 충남 등지에서 불심검문식 토양검사를 실시해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면서 정작 오염된 토양을 살리려는 의도로 친환경농사를 지으려는 것마저 가로막아왔다.

친환경농가의 하천수 사용도 제한된다. 오씨는 “특히 엽채류 농가의 경우 하천수를 쓸 시 농약이 검출될 확률이 높다. 물론 지하수를 뚫으면 된다고 하지만 최소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그나마도 임차농의 경우는 남의 땅에 지하수를 팔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친환경농사를 짓기 힘든 현실”이라 지적했다.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농업용 용수에 대해 “농업용수 이상의 수질이 요구된다”고 규정하며 수질검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유기농업 기준인 ‘코덱스 가이드라인(CAC GL 32)’은 별도의 수질기준을 두지 않으며, 용수의 수질검사도 실시하지 않는다. 대신 농업활동을 통해 수자원을 보호하고, 수자원이 오염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다.

토양도 마찬가지다. 친환경농어업법은 “토양에서 유기합성농약 성분이 검출되면 안 된다”고 규정하는 데 비해, 코덱스 가이드라인과 EU의 기준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미국에선 토양 내 잔류성분 검사를 인증기관 재량에 맡길 뿐, 강제성은 없다. 토양의 유해성분에 대한 검사 없이 유기농 인증이 가능한 게 소위 ‘선진국’들의 방식이다. 요컨대 ‘깨끗한 땅에서만 유기농사를 짓자’가 아닌, ‘유기농사를 통해 땅을 깨끗하게 만들자’는 목적의 유기농사가 진행된다.

한편 작목반에서 한 농가가 농약 검출로 인증이 취소될 시 나머지 작목반 농민들도 ‘연대책임’으로 인증을 취소당한다. 따라서 친환경농민들 중 작목반을 꾸리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친환경농업이 ‘연대와 공생’을 핵심가치로 삼는 농업인데, 정작 현행 친환경인증제는 친환경농민들의 ‘연대와 공생’을 돕긴 커녕, 오히려 ‘작목반 연대책임 묻기’ 식의 제도를 통해 농민의 개별화, 파편화를 부추긴다.

파편화된 농민들은 점차 친환경농사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 이한세씨는 “그 동안 친환경농사를 왜 열심히 지어왔는지 의문이 든다”며 “규제 중심, 농민을 ‘농약 칠지도 모르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친환경농정은 더 많은 농민을 친환경농업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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