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농지개혁, 임차농 보호부터 시작하자

무수한 예외조항에 퇴색한 ‘경자유전’
재확립 앞서 임대차 제도 개선 필수

  • 입력 2019.01.01 00: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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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현행헌법은 농지의 경자유전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농지법이 제정된 후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무수한 예외조항이 생겨났고 이와 더불어 횡행하는 편법·불법, 안 하느니만 못한 농지이용실태조사 등으로 그 존재 의미는 퇴색한 지 오래다.

때문에 오늘날 농지개혁은 경자유전 재확립을 골자로 한다. 비농민의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농지의 농업 이외 목적 사용을 금지토록 하는 게 핵심인데, 이를 위해 농지 임대차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지배적 의견이다. 이에 실제 농촌 사례를 통해 농지개혁의 방향성을 짚어보려 한다.

날이 갈수록 임차농과 임차농지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에겐 제대로 된 임대차 계약이 안정적인 농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진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당산봉에서 바라 본 고산리 들녘 모습. 한승호 기자
날이 갈수록 임차농과 임차농지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에겐 제대로 된 임대차 계약이 안정적인 농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진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당산봉에서 바라 본 고산리 들녘 모습. 한승호 기자

농지법 개정으로 비농민의 농지취득 조건은 상당히 완화돼 있으며, 농지는 투기 대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때문에 ‘농민은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게 농민 대다수가 인식하는 현실이고 경자유전 원칙 역시 유명무실해졌다. 실제 오늘날 농지 상당수는 부재지주 소유로 농민들은 농지 소유주의 얼굴조차 모른 채 땅을 임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임차농가 비율은 2017년 56.4%로 전체 농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 전체 농지 중 임차농지 비율은 2011년 47.3%에서 2017년 51.4%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상가·주택 임대차 계약과는 다르게 현행 헌법에서 임차 농민을 보호하는 규정은 전무하다.

 

계약 의무 강화

농지법 상 임대차 및 사용대차는 서면계약을 원칙으로 한다. 허나 이를 뒷받침하는 단속이나 제재 규정이 없어 농촌에서 이뤄지는 농지 임대차 계약은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대부분 구두계약으로 치러지기 때문인데 직불금 부당수령 등 농지와 관련된 문제 대부분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계약 의무를 강화하기에 앞서 농지 소유주가 임대차 서면계약을 꺼리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여기엔 8년 자경 시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조세특례제한법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때문에 농지 소유주는 본인이 직접 경작하는 것처럼 임차인에게 직불금 신청 등을 강요하고, 농지가 필요한 농민들은 임차를 위해 이를 수용하곤 한다.

농지를 임차해 경작중인 농민에 따르면 실제로 농촌에선 수매 계약 시 본인 대신 농지 소유주 이름을 기표하거나 농약·비료 등 기자재를 지주 명의로 구매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럴 때 울적한 기분이 든다는 한 농민은 “남의 농사짓는 서러움이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서면계약 조항이 있어도 실제 현장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땅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 나가야 되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농민 역시 “임차 농지에서 경작하는 농민들은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을 거고 나 역시 몇 년 전 지주 이름으로 지급된 변동직불금을 달라고 했다가 땅을 뺏긴 경험이 있다”며 “결국 직불금을 받아내긴 했으나 농민 입장에서 이런 부당수령을 신고할 수 없는 게 내년도 농지 임차가 걸려있고 임대차를 지속할 수 없다 해도 추후 농사지을 사람도 어차피 다 동네 아는 사람이라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게 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용중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사무처장은 계약 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관련 공무원 등 관계자의 책임 강화를 강조했다. 전 사무처장은 “부재지주 등을 걸러내기 위한 농지이용실태조사도 이장뿐만 아니라 면장 또는 담당 공무원 등으로 책임을 확대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서면계약을 명시한 법 조항을 강제하도록 책임질 사람도 여럿 지정하고 책임의 강도 역시 확대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대차 갱신 권한

오늘날 부재지주의 농지 임대차를 알선·관리하는 ‘마름’ 역할은 부동산이 도맡고 있다. 소유주가 농촌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농지를 임차하는 농민들이 계약 갱신 등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때문에 계약 의무 강화와 유사한 맥락이나 농지 임대차 갱신 권한을 농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기도의 한 농민은 임차한 논을 트랙터로 갈던 도중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땅 주인이 바뀌었으니 이 땅을 다른 사람에게 임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간 임차 농지에서 쌀을 재배해온 농민은 “농지의 매매 사실도 알지 못했던 까닭에 그저 황망할 따름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는데, 추후 상황을 파악해보니 매매 계약으로 농지 소유주가 바뀌자 부동산 중개인이 자신과 친분 있는 동네 사람에게 땅을 임차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위한 농지 전용 등 규정이 완화돼 임대차 계약을 지속하는 대신 논·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농지를 전용하면 지목을 잡종지로 변경할 수 있어서인데, 임대차 계약상 철저하게 ‘을’ 입장인 농민은 농지 소유주가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농사를 그만둬야 하는 실정이다.

 

임차료 상한 설정

‘부르는 게 값’인 임차료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농지법 제정 전까지만 해도 1986년 제정된 「농지임대차관리법」이 농지 임대차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계약당사자인 농민의 권익 보호 역할을 수행했다. 농지임대차관리법은 임대차계약의 신고 의무와 임차료 상한, 계약해지 제한 등을 규정했는데 특히 임차료 상한의 경우 시·군 조례로 정하고 그 적정여부를 매년 검토·조정토록 해왔다. 임대차관리법 폐지 이후엔 농지 관련 현행법 어디에도 임차료를 규정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임차료는 관행적으로 통용되는 산법에 의거한다. 경지정리 및 농지 상태 등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임차농은 논·밭 200평 1마지기당 80kg 쌀 한 가마니를 임차료로 지불한다.

하지만 최근 전북에선 쌀값 상승을 이유로 농지 소유주가 임차 농민에게 임차료를 추가로 요구한 일이 있었다. 언론 등이 쌀값 폭등을 호도하고 나서자 농민에게 땅을 빌려준 소유주가 임차료 인상을 요구한 것인데, 몇 년 전 쌀값 폭락으로 인한 변동직불금 지급 당시에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했다.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최근 밭 임차료가 폭등하고 있다. 지가상승의 원인도 있고 논에 비해 밭 생산성이 높은 영향도 있다. 밭에 대한 농민 수요가 많다보니 임차료가 상승하기도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표준임대차상한선을 설정해 임차료 산정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 정책위원장은 △임대차 기간 장기화 △임차료 상한 마련 △갱신권 부여 등 임차농 보호를 시작으로 농지소유구조 개선을 위한 경자유전 확립, 직불금 부당수령 대책 마련 등을 농지개혁 핵심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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