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 입력 2019.01.01 00: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준비하는 요즈음 마을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총회가 열린다. 마을 이장을 새로 뽑기도 하고, 마을기금의 대부분이 마을 어르신들의 조의금으로 쓰여 졌음을 보고한다. 마을이 초고령화 됐음을 알 수 있다.

마을총회는 대부분 마을의 대동계를 겸하고 있다. 두레, 품앗이라는 이름이 아주 오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엔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두레와 품앗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내 세대가 농촌공동체를 목격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마을총회는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있다. 옛날에는 그랬지 하며 시작된 울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고되기는 했어도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며 다들 한목소리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미운정, 고운정이 생기며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때로는 갈등과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오해를 풀고 용서를 나누는 과정들, 이것이야말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던 사람맛 나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다.

당시라고 마을 사람 간에 어찌 좋기만 했을까 싶지만, 힘든 일을 서로 나누고 일손이 필요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뛰어난 지혜가 아직도 남아 있음에 다행이다 싶다.

마을 대동계에선 지금도 하루의 품삯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야기 된다. 그들에게 품삯의 개념은 어떤 것일까? 아직도 우리 고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우리 동네를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한 낡은 마을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구누구는 이래서 누구누구는 저래서 이유도 가지가지이다. 농산물 가격도 좋지 않은데 어찌 품삯을 세상 돌아가는 대로 받겠는가 하신다. 품삯은 필요 없다며 손 사레 치며 소매를 걷어붙이는 울 어머니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아주 오래된 미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엔 농민회에서 재정사업으로 김을 판매한다고 김 40톳을 마을회관에 가지고 갔더니 마을 어머님 세 분이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관심 가져야 한다면서 파셨다 한다.

그런다고 오늘날에도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강요할 수 없음을 모두들 알고 계시지만 때로는 젊은 사람이나 초보 귀농인들에 대한 관심이 과한 정도로 표현되기도 한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이것저것 쉼 없이 물어온다. 어디서 살며 부모는 살아있는지 형제자매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등등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세상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누구나 알면서도 언제부터 ‘우리’, ‘함께’라는 단어가 골방의 퀴퀴한 냄새나는 단어가 돼버렸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는 경쟁의 대상이 됐고 사회에서 만나는 동료조차 이겨야만 할 사람이 돼버렸다.

눈앞의 이익이 우리 사회의 전부가 아닌데도 그것이 전부인양 치부되고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뭔가 덜 떨어진 사람처럼 치부되기 십상이다. ‘나’부터 먼저 생각하고, ‘나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전반의 모습에서 소외되어 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우리 함께’ 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말들까지 생겨났으니….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 나를 버리고 더 큰 우리가 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젊은이를 전통의 지식으로 이끌어 주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 그 누구도 차별과 소외됨이 없이 공동체가 되어 살아 숨 쉬는 세상, 내가 더 많이 일을 해도 손해라는 생각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여전히 꿈꾸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