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지역과 청년이 맺는 사회적 관계

“청년이 떠나 돌아오지 않는 농촌
농촌이 청년과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지길”

  • 입력 2018.12.23 18:00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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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김훈규(경남 거창)

막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을 때 쯤, 새로 이사를 가서 정착한지 갓 1년이 된 작은 농촌 마을이 젊은 부부를 맞이했던 환대는 실로 대단했다. 워낙 젊은 사람들이 없는 작은 마을이었으니 갓난아이를 볼 일이야 명절이나 휴가철에 도시의 자녀들이 놀러와야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마을로 들어온 젊은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제 엄마 품에 안겨 마을회관에라도 나타나면 둘러앉은 어르신들의 노리갯감이 되기에 충분했고, 앵앵거리며 큰 소리로 울기라도 하면 그것이 그저 노인들에게 큰 웃음 짓게 했었다.

아비인 청년은 크고 작은 마을의 일에 부지런히 참여하기도 했거니와 오랜 마을의 숙제도 몇 마디 말과 글로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지역의 군수 나리도 마을로 불러올려 마을의 골치 아픈 숙제를 해결해주는 재주가 있었으니, 늙고 왜소한 노인들의 눈에는 참 신통방통했으리라.

“농촌에도 우옛든 젊은 사람이 있어야 돼! 애 울음소리가 나야 마을에 활기가 있거덩! 자네가 계속 우리 마을에 살믄 좋겠네. 내년에는 이장을 마 자네가 맡아!”

주민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청년이 노인들에게 무시로 했던 농이 있다.

“젊은 사람이 이래 반갑고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 요래 좋으면, 어르신들 자식들도 들어오라고 하시면 안됩니꺼? 농사도 같이 짓고 손주들 재롱도 만날 보면 얼마나 좋습니꺼?”

“머라카노! 그건 안 돼! 절대 안 되지! 갸들이 공부를 얼마나 했는데! 무슨 고생을 할끼라꼬 이런 촌에 들어온단 말이고!”

“대학 마친 저 같은 사람은 들어와서 사는 거는 괜찮고, 어르신 자식들은 안 되고, 뭐 그런 게 어딨습니꺼!”

“안 돼! 우리 아들이고 며느리는 이런 촌에서는 못살아! 빌어먹어도 도시에서 저거들 편한데서 빌어먹는 게 낫지 이런 데는 살 데가 아니야!”

농촌의 마을 주변과 학교 담장에 현수막이 많이 붙었다. 예전처럼 ‘누구네 아들 사법고시 합격’ 이런 문구는 보기 힘들지만, 무슨 박사 학위를 땄네, 장군 진급을 했네, 공무원 서기관이 됐네, 심지어 어느 큰 회사에 무사히(?) 취직을 했다는 소식까지 전한다. 집안을 뛰어넘어 지역과 마을의 자랑으로 삼고자 하는 부모의 심경을 헤아리는 이웃의 배려 깊은 현수막의 향연에 농촌의 거리를 매일 배회하는 나는, 농촌에서만 왠지 청년일 것 같은 나는 씁쓸하다.

언젠가 우리 지역의 장학금 제도에 대해서 한번 비튼 적이 있다. 지역의 내로라하는 많은 분들이 기탁하고, 주민들의 크고 작은 성의가 모인 장학금을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만 많이 지급하지 말고, 지역에서 자라서 지역의 대학에 가거나, 지역에 남아서 할 일을 찾는 청년에게 더 많이 지급하자 했다. 그 청년이 지역에서 직업을 구할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하고, 지역에서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집을 구입할 자금이라도 ‘아주 특별한’ 저리로 지원하는 ‘사회적 자산’을 지역이 물려주자고 했었다. 부모를 잘 둔 탓에 금수저가 되기도 하겠지만, 부모에게 기댈 것이 부족하고 받을 수 있는 유산이 없는 것을 탓할 수 없으니, 지역이 바로 그 청년과 사회적 상속관계가 되자고!

하여 도시가 농촌에 보내는 시선과 관심 중에 ‘고향세’ 같은 류가 있다면 그것이 그런 사회적 자산을 형성하게 하는 토대가 되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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