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이슈]“생산자-소비자 관계 단절되면 생협의 미래는 없다”

  • 입력 2018.12.23 18:00
  • 수정 2018.12.24 09:2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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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소비자. 우리 농업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체다. 농민이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도 그것을 사먹을 소비자가 없다면 농민은 살아가기 힘들다.

특히 생활협동조합은 생산자-소비자 간 배려와 협동으로 성장했다. 생협 소비자들은 친환경농산물을 생협 매장에서 구입하며 ‘책임소비’를 추구해 왔다. 왜 생협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내면서도 친환경먹거리를 이용할까. 아울러 그들이 생산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생협 소비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9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의 한살림연합 매장에서 김미경씨가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김씨는 “생협 생산자-소비자 간 교류 과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지난 19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의 한살림연합 매장에서 김미경씨가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김씨는 “생협 생산자-소비자 간 교류 과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충남 천안시에 거주하는 김미경씨는 한살림연합 천안아산생협에서 활동한다. 김씨는 “예전에 아들이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다.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섭취했었는데, 가족의 먹거리에 대한 고민 과정에서 한살림연합과 닿게 됐다”며 활동 시작 계기를 설명했다.

가족 먹거리 개선 목적으로 시작한 한살림 활동은 아들의 아토피를 치유함과 함께 김씨의 생활을 바꿨다. 김씨는 “현재 모든 1차 농산물과 계절식품은 생협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두부, 달걀, 고기, 야채 등 거의 모든 먹거리를 생협 매장에서 산다. 가공식품은 가급적 구입하지 않으나 가끔씩 조리제품을 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김씨는 “요즘 조합원 중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들 중엔 1차 농산물보단 가공품을 구매하는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천안에 사는 석애연씨는 주로 콩나물, 쪽파 등 야채와 고추장, 된장을 100% 한살림 매장에서 구입한다. “GMO 먹거리가 횡행하는데 어떤 먹거리가 GMO인지 제대로 표시도 안 된 상태에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석씨는 이젠 대형마트에서 먹거리 구입하는 것도 두려울 정도라 한다. 석씨는 “요즘 들어선 ‘많이 먹는 것’보다 ‘제대로 된 먹거리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석씨 또한 가공품보단 1차 농산물을 생협 매장에서 주로 구입한다고 했다.

한살림연합이 지난 7월 조합원 1만1,7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 전국 한살림 조합원 의식조사’에 따르면, 한살림 조합원들은 매장 물품들 중 채소류(31.2%)와 우유·유정란 등 유제품(22.4%)에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아울러 조합원들은 한살림의 가치들 중 가장 공감하는 것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기 위한 노력(5점 만점 기준 4.37점)’을 선택했다. 이는 먹거리 불안감 관련 설문조사에서 GMO(23.1%), 유해식품첨가물(22.6%)에 높은 우려를 표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생협 활동을 통해, 농민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는 게 생협 소비자들의 생각이었다. 김씨는 “정기적으로 천안·아산지역 생산자 분들과 만난다. 생산현장 점검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김장 및 일손 돕기 등 지속적인 생산자들과의 교류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관계를 맺은 한 친환경 감자농가의 농지에서 농약이 검출됐다. 생산점검 때 확인한 바론 단 한 번도 농약을 치지 않은 분이었고, 정황상 인근에서 농약이 비산된 게 확실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며 생산한 감자를 전량 폐기했다. 그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는데 가슴이 아팠다. 생산자들과 만나면서 그 분들 삶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의 아픔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래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 교류는 중요하다.”

그러나 생협의 규모가 커지고 조합원도 늘어나는 과정에서, 과거에 비해 생산자-소비자 간 교류도 약해지게 됐다. 위 한살림 의식조사에 따르면 조합원의 73.3%가 지난 1년간의 조합원 활동(생산지 방문 및 도농교류, 식생활 교육, 지역소모임 활동 등)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조합원 참여가 왜 어렵냐는 질문엔 56.1%가 참여할 시간이 없어서, 14.3%가 한살림 활동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밝혔다.

석씨도 바쁜 일상 때문에 생산지 방문이나 도농교류 활동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씨는 “생협 활동을 안 했다면 친환경농업 및 먹거리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평범한 소비자로 살았을 것”이라며 “원래 오이는 반듯한 것만 있는 줄 알았으나, 생협 생산자들이 농약을 쓰지 않고 힘들게 농사짓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바쁜 일상 때문에 생협 활동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생협 조합원들 중 생산자-소비자 간 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두레생협연합이 지난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합원들은 원한다’ 설문조사 결과, 향후 강화를 희망하는 활동으로 ‘생산지 방문, 교류행사(37.7%)’가 가장 많이 뽑혔다.

김씨는 “요즘 생협 소비자들 중에도 생협을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 구매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걱정이다. 생협이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곳’으로만 인식되고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단절되면 생협의 미래는 없다”며 “생협의 조합원 대상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생산자들을 더욱 자주 찾아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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